도서 소개
조선시대 실제 인물들의 관계와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 속에 남겨진 문장과 침묵의 사이—즉 ‘행간’을 읽어내며 탄생한 소설이다. 오랜 시간 고전 시가에 천착해 온 작가는 남아 있는 문장 자체보다, 그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백에 주목한다.
기록은 간결하지만 감정은 생략되어 있고, 사건은 남아 있지만 관계의 결은 지워져 있다. 작가는 바로 그 틈에 상상력을 밀어 넣는다. 인용된 문장을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장 뒤의 감정의 흐름과 맥락을 복원해내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적 재구성이 아니라, 기록 너머에 존재했을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한 올 한 올 되살리는 작업이 된다. 독자는 이미 쓰인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쓰이지 않은 생생한 이야기를 함께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
아름답고, 괴이하고, 파란만장한 우정 이야기
“질투로 시작된 우정이었다. 대결로 이어진 우정이었다.
마지막은 친형제 같은 우정, 혹은 우정의 적수,
어쨌든 간에 일반적인 형태와는 묘하게 다른 우정이었다.”
기록되지 않은 마음을 읽다
도서출판 단비의 이번 신간 『질투가 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조선시대 실제 인물들의 관계와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 속에 남겨진 문장과 침묵의 사이—즉 ‘행간’을 읽어내며 탄생한 소설이다. 오랜 시간 고전 시가에 천착해 온 작가는 남아 있는 문장 자체보다, 그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백에 주목한다. 기록은 간결하지만 감정은 생략되어 있고, 사건은 남아 있지만 관계의 결은 지워져 있다. 작가는 바로 그 틈에 상상력을 밀어 넣는다. 인용된 문장을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장 뒤의 감정의 흐름과 맥락을 복원해내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적 재구성이 아니라, 기록 너머에 존재했을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한 올 한 올 되살리는 작업이 된다. 독자는 이미 쓰인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쓰이지 않은 생생한 이야기를 함께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천재와 천재의 만남
소설의 주인공은 조선 중기의 천재 문인 허균이다. 작품 안에서 그는 ‘균’으로 불리며, 평생의 모델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형 허봉을 따라잡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해 온 인물이다. 그런 균에게 15세 되던 해, 형의 편지 속에서 처음 접한 ‘금 군’이라는 또래 소년의 존재가 내면을 뒤흔든다. 형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더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은 균에게 깊은 충격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남긴다. 균은 각을 본 적도,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그 순간부터 미움, 시기, 질투, 적의 등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강력하고도 복합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유배에서 풀려난 형 허봉을 만나러 백운산에 함께 가자는 각의 제안에 균이 선뜻 응하지 못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형을 만나러 가자는 말이 나온 뒤로도 이태가 흘러 드디어 두 소년은 만나고 겨룬다. 시를 두고, 소동파를 두고, 문장의 품격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대결.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과 적대, 존경과 승부욕이 뒤섞인 채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이어지고, 균은 그를 통해 자신의 한계와 욕망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허균과 김수영의 콜라보
작가는 흔히들 생각하는 ‘우정’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놀라운 우정의 양태를 독자 앞에 내놓으며 이야기의 앞과 뒤에 김수영과 박인환의 짧은 글을 배치해 소설의 독해에 힌트를 제시한다.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 시인 김수영은 생전에 박인환을 이렇게 단정했다. 재주가 없고 시인으로서의 소양도 없으며 경박하다고, 장례식조차 일부러 가지 않았다고. 그러나 인환이 죽고 난 뒤 김수영이 남긴 글 한 편은 이 냉정한 경멸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품고 있다. “야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상아 파이프를 물 것이라는, 죽은 친구를 마치 눈앞에 두고 쓴 것 같은 문장. 소설 『질투가 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바로 이 두 문장 사이의 거리에서 출발한다. 경멸과 그리움, 적의와 우정이 어떻게 같은 관계 안에 공존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열고 닫는 자리에 김수영과 박인환이 놓이는 것은, 이 복잡한 감정이 특정 시대나 인물의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진실임을 조용히 선언하는 방식이다.
우정에 관한 ‘연구’가 제목인 까닭
소설은 서술자가 명확히 존재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이 글을 쓰는 내 관심은 실상 각의 삶에 있으며, 균이 각을 바라보는 감정과 그 변화 쪽에 있다”고 밝히는 서술자는 역사적 기록과 추론 사이를 오가며, 균과 각의 우정을 분석하고 질문하고 때로는 판단을 유보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사료의 빈틈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작가의 힘에 있다. 고전 시가를 연구해온 소설가인 그는 단편적인 기록과 인용된 문장 사이에 남겨진 여백을 상상력으로 촘촘히 메워 넣으며,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려낸다. 그 복원의 과정 속에는 허균과 그의 주변 인물들뿐 아니라, 선조와 이이 같은 당대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들은 단순한 역사적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입체적으로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하며 서사의 깊이를 더한다. 나아가 이 작품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은근히 되묻게 한다. 기록된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이의 침묵과 결핍을 스스로 해석하고 상상하는 과정이야말로 읽기의 본질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천, 수만 가지 우정의 모습
작가 설흔이 이 소설을 통해 청소년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하다. 나보다 뛰어난 친구를 사귀었을 때,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는가, 아니면 질투하고 미워하다가 돌아서는가. 그 선택 앞에서 균은 둘 중 어느 쪽도 단순하게 택하지 않았다. 질투로 시작된 우정, 대결로 이어진 우정, 마지막에는 친형제 같기도 하고 여전히 적수 같기도 한 우정. 감정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죽었다가도 되살아난다는 이 소설의 통찰은, 관계의 복잡함을 처음 온몸으로 겪어 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건넨다. 우정의 모습은 수천, 수만 가지이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우정이 반드시 가장 평온한 우정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은 그 사실을 역사 속 두 천재의 이야기로, 그리고 현재 우리 곁의 두 시인의 이야기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증명해 낸다. 우정은 아름답기만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괴이하고 파란만장하며, 그 복잡함 자체가 인간 관계의 진실이라고. 이 소설은 그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다.
균과 금 군의 이야기는 수백 년 전의 일이지만, 더 잘난 친구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 인정하기 싫지만 끌리는 마음, 지고 싶지 않은데 져버린 것 같은 기분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관계의 복잡함을 처음 온몸으로 배워가는 청소년에게, 그리고 그 시절의 감정을 여전히 기억하는 어른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 우정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 대신, 복잡해도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작가 소개
지은이 : 설흔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인물이나 공간을 비틀어 낯설게 보는 데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우정 지속의 법칙》 《조선 소녀들, 유리 천장을 깨다》 《학교라고는 다녀 본 일이 없는 것처럼》 《시노애락》 《독학자를 위한 향가 창작 수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