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한 개인의 역사도 알고 보면 고작 제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즉, ‘바람의 역사’라는 제목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바람이 들었다 빠지기를 반복했던 시인 개인의 소소하고도 예민한 삶의 궤적(개인의 역사)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의 역사≫는 강원도 주문진 출신 강세환 시인이 자신의 삶과 문학을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을 투명하게 담아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강세환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삶의 문학’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작품집으로, 시인의 일상과 개인적인 경험이 곧 문학이자 실재(real)이며 역사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특히 시인이 겪은 백내장 수술은 이 시집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안약을 넣고 눈을 감고 있는 짧은 시간, 수술대 위에 누워있던 찰나의 순간들이 시인에게는 깊은 사유의 시간이 되었고, 수술 후에는 마치 둑이 터지듯 시적 영감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시 쓰는 행위 자체가 곧 생을 살아내는 방식임을 고백하는 이 시집은, 독자들에게 삶과 문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삶에 대한 기록과 반복적인 “쓰는 행위”―강세환의 시―“(…) 문학 특히 시가 소수의 장르가 되었다 해도 시가 불가능한 세계로 가는 미로라 해도, 출구조차 없다 해도, 벽과 마주 앉은 자는 벽과 마주 앉을 것이고, ‘쓰는 자’는 ‘쓰는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자는 고독의 시간을 살아야 할 것이며 그 고독의 시간은 또 고립과 대립의 시간을 겪어야 할 것이며 또 홀로 세상과 싸워야 할 것이며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혹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백이나 여백이라 해도 시인의 생각과 언어와 또 시에 대한 열정과 통찰은 또 하나의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노트북 키보드 위에서 시가 될 것이며 그의 ‘쓰는 행위’는 또 참을 수 없을 만큼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마도 아무도 몰래 이 2025년 12월의 끝에서, 이 겨울밤에 그는 또 한 권의 신작 시집을 시치미 뚝 떼고 탈고했을 것만 같다.”(황지니, 자유기고가) (아무도 몰래 그 겨울밤에 시치미 뚝 떼고 탈고한 그 한 권의 신작 시집이 바로 여기 2026년 6월의 ≪바람의 역사≫가 되었다.)
<을숙도 걷기>
시계 방향으로 걸어도 되고
반대 방향도 상관없다
오후 3시 반에서 5시쯤 걸어도 되고
그보다 이른 시간도 괜찮다
나무 이름을 몰라도 될 것 같은
11월 중순도 좋고 12월도 좋다
꽃들이 제 이름을 가슴께쯤에서 터뜨리는
3월도 좋고 5월도 좋고
반려견과 같이 걸어도 좋다
낙동강을 끼고 걸어도 되고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행간을 찾아 걸어도 되고
늙은 건달처럼 걸어도 되고
4성 장군처럼 똑바로 걸어도 된다
보는 사람도 없고
걷는 사람도 없다
간만에 나를 향해 걸어도 된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도 성공할 수 없다
걱정하지 마라
<시작 노트>
시 없이 걸었다. 그냥 걷고 싶었고 뭔가 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뭔가 좀 툭 던져놓고 싶었다. 평생 낚싯대 앞에 앉아 본 적 없었지만 낚싯대 함 던져놓고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고작 작은 걸음으로 방황하듯, 시계 방향으로 을숙도 한 바퀴 돌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젠 걸어도 시가 된다. 하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었다. 저 강과 이 산책로와 저 구름과 함께 걸었다. 그러나 또 한 번 더 걸으면, 한 번 더 걸으면, 한 번 더 걸으면… 그것은 단지 반복하는 것만 아니라 뭔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고 다른 이름이 되는 것 같아 그 이름을 또 불러보고 싶었다. 끝이 없는 길이라든가, 길 없는 길이라든가, 가지 않은 길이라든가….
작가 소개
지은이 : 강세환
강원도 주문진 출생.-시집 ≪취리히의 밤≫, ≪늙은 코끼리의 노래≫, ≪누가 장주의 꿈을 깨울 것인가≫, ≪풍경과 심경≫, ≪이 단순하고 뜨거운 것≫, ≪다시, 광장에서≫, ≪아침 일곱 시에 쓴 시도 있어요≫, ≪김종삼을 생각하다≫, ≪시가 되는 순간≫,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을 출간했고 산문집 ≪시의 첫 줄은 신들이 준다≫(전 2권) 등 있음.
목차
횡단/ 을숙도 걷기/ 일전(一戰)을 앞두고/ 플라스틱 의자 1/ 플라스틱 의자 2/ 누설/ 이것은 웃음인가 농담인가/ 11월/ 노인 1/ 구름 1/ 구름 2/ 구름 3/ 빈손/ 저 돌과 같이/ 쓴다는 것/5월/ 파주, 어느 출판사 앞에서/ 4월이여 식탁이여/ 북향/ 노인 2/ 작은 골목/ 1982년 여름/ 무겁지 않기/ 일흔 넘어/ 설렁설렁/ 손이 하는 일/ 각자도생/나의 시여! 용서하라/ 일장춘몽/ 이태석 길/ 백내장 수술/ 미처 못 한 말/ 헛바람/ 이 아침의 시/ 쾅! 쾅! 쾅! 문 닫는 소리/ 부부 동반/ 백내장 수술 후/천변 걷기/ 혼잣말/ 너구리/ 늦은 오후/1시 29분/ 끝까지 간다는 것/ 사랑 없인 못 살아요/ 과음/ 깃발/ 유구무언/ 마치 기우제 지내는 힘으로/ 백내장 수술 후 몇 가지 조언/ 동쪽/ 여자/ 백내장 수술 후 근황/ 눈물과 슬픔은 어디에 있는가?/ 밀실/ 날개/ 수술대 위에서의 단상을 기록한 시/ 산책/ 시작 노트/ 하루아침/ 전작(全作) 미발표 시집/ TV/ 노인 3/ 북쪽/ 느림 1/ 느림 2/ 송도 걷기/ 굿/ 노후 1/ 노후 2/ 아주 사적인 신화 읽기/ 눈물 1/ 눈물 2/ 사족 1/ 사족 2/ 사족 3
시작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