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는 흔히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할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누군가 죄를 자백했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유죄의 증거이자 사법 정의의 실현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평생 경찰 피의자 신문의 문제에 천착해, 구조화된 허위자백의 위험성과 오판의 문제를 제기해온 사울 카신 교수는 다수의 사례를 들어, 이 보편적 믿음이 실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낱낱이 보여준다.
허위자백은 중세의 유물도,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예외적 사건도 아니다. 어리거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특정 누군가에게만 닥치는 비극도 아니다. 책을 펼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허위자백』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 밀폐된 조사실 안에서 살인범의 대본을 스스로 읽어 내려가는 과정을 파헤친 인지과학 보고서이다. 수사 현장에서 허위자백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과 그것이 사법절차를 왜곡하는 과정을 추적해 법과 심리학의 교차점에서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정의의 민낯을 드러내 보인다.
출판사 리뷰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하는 이들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허위자백』을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카신은 무고한 이들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기법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고, 이를 막기 위한 해법을 통찰한다. _존 그리샴
세계적인 법정 스릴러 작가 존 그리샴의 말대로, 우리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스스로 자백하는 사람의 심리를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이익을 지키려 하기에, 고문이나 폭력이 허용되지 않는 현대의 사법 시스템 아래에서 무고한 사람이 살인이나 강간 같은 중죄를 자백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유죄의 명백한 증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중이 가진 가장 견고한 상식이다. 그러나 사울 카신 교수가 『허위자백』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수사 기록과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이런 우리의 상식을 단숨에 허물어뜨린다.
오해 혹은 착각
『허위자백』은 폭력보다 무서운 현대 심리 신문의 실체를 폭로한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방 안에서 “이미 당신의 범행 증거가 확보되었다”는 수사관의 정교한 속임수와 거짓말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무고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수사기관에 체포되고 구금되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사관이 원하는 대답을 내뱉는 ‘순응적 허위자백’을 하기 싶다. 더 나아가 신문이 길어지면 수사관의 확신에 동조되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말 죄를 지었을지도 모른다’며 가짜 기억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내면화된 허위자백’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 책은 ‘과학적 신문기법’이라는 명분 아래 작동하는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확증편향에 갇혀 무고한 피의자를 범인으로 만들어나가는지 냉정하게 추적한다. 자백을 유죄의 완벽한 증거로 신봉해온 사회적 맹신은 결국 인간의 인지적 취약성과 결합해 돌이킬 수 없는 사법 살인과 오판이라는 시스템의 오류를 낳는다. 사울 카신이 치밀하게 축적해온 수십 년의 법심리학적 증언은 독자들로 하여금 당연시해온 정의의 정의(定義)와 상식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게 만든다.
14시간 만에 ‘만들어진 살인자’, 멀리사 칼루신스키 사건
2009년 시카고 외곽의 한 어린이집에서 영아가 의식을 잃고 숨지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부검의는 아이가 머리뼈 골절, 즉 둔기 외상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고, 살인사건 수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근무 중이던 22세의 보조교사 멀리사 칼루신스키가 조사실로 호출되었다. 그는 학교에서도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는 형사가 “당신이 곤경에 빠졌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조사실 문이 닫히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좁은 방에서 형사들은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고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끊임없이 유죄를 추궁했다. 폐소공포증이 있던 칼루신스키는 울면서 70번이 넘게 아이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했지만, 형사들은 “진상을 파악할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며 그를 압박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덫을 놓았다. 타살의 증거가 “의학적이고 과학적으로 확실하다”며 피의자의 현실감각을 흔든 뒤, 이른바 ‘최소화 전략’을 꺼내들었다. ‘사고는 매일 일어난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같은 말로 죄책을 덜어주는 듯한 각본을 제시한 것이다.
신문이 시작된 지 4시간 만에 마침내 아이가 넘어지는 걸 봤다고 인정한 칼루신스키는 6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말했고, 9시간 후에는 좌절감에 아이를 바닥에 던졌다고 자백했다. 형사들이 만들어놓은 각본대로 순응해버린 것이다. 14시간이 흘렀을 때, 그는 형사들이 건넨 플라스틱 인형을 두 손으로 잡고 아이를 바닥에 내던지는 장면을 성실하게 재연했다. 그러고는 “집에 가서 부모님과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하며 신문이 언제 끝날지 물었다. 이 지옥 같은 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형사들의 서사에 맞춰주는 것’뿐임을 깨달은 한 평범한 여성이 14시간 만에 살인자로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과학의 이름으로 기억을 의심하게 만드는 ‘가짜 증거 전략’
더욱 서늘한 진실은, 수사관이 내미는 위조된 과학적 증거 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결백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하고 조작해낸다’는 점이다.
1997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발생한 술집 주인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웨슬리 마이어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처음에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으나, 형사들은 “피해자의 손아귀에서 당신의 머리카락이 발견됐다는 통보가 왔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던졌다. 미국 대법원 판례에 의해 합법화된 이른바 ‘가짜 증거 제시 수법’이었다.
이러한 사법 시스템의 거대한 압박 속에서 마이어스의 내면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의 뇌는 극단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끔찍한 인지적 오작동을 일으켰다. ‘내가 결백하다면 왜 내 머리카락이 거기 있지?’ ‘내가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은 사이에 정말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혼란에 빠진 마이어스는 결국 “내가 그랬을 것”이라며 하지도 않은 죄를 스스로 확신하는 ‘내면화된 허위자백’의 늪에 빠져버렸다. 훗날 DNA 검사를 통해 그 머리카락은 마이어스의 것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그는 이미 17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뒤였다.
국경을 초월하는 밀실의 기만
『허위자백』에 등장하는 미국 사법 시스템의 심리 기만과 인지적 오류는 먼 나라의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사법 역사에서도 숱하게 발생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버린 현실이기도 하다. 한 예로 2007년 충남 보령에서 발생한 김유정(가명) 사건을 살펴보자. 당시 17세 소녀였던 김유정의 실화는 사울 카신 교수가 40여 년간의 연구를 통해 밝혀낸 ‘허위자백의 메커니즘’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잔혹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2007년 보령에 살던 김유정의 동생 지민(가명, 당시 14세)이 실종되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유정에게 수갑을 채운 채 몇 시간 동안 조사실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압박했다. “동생들이 다 얘기했어. 그날 네가 밀어서 지민이가 넘어져 죽었다고.”
경찰은 어린 동생들의 가짜 진술을 앞세워 고립된 유정의 현실감각을 뒤흔들었다. 전형적인 ‘가짜 증거 제시 수법’이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한 극한의 피로 속에서, 유정은 경찰이 자신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이 괴로운 신문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 순간 김유정이 선택한 생존 전략은 사울 카신 교수가 책에서 그토록 경고했던 ‘순응적 허위자백’이었다.
(자백) 진술서를 쓸 때 이렇게 크게 문제가 될지 몰랐다. 거짓으로 쓰더라도 지민이가 살아 있으면 나중에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_김유정 진술서
당장의 끔찍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내가 동생을 밀쳐 숨지게 했다’는 무시무시한 허위자백을 한 것이다. 당시 10살과 8살이던 유정의 동생들이 경찰의 압박과 암시에 유도되어 ‘유정이 지민을 죽이는 장면을 보았다’는 거짓 진술을 이끌어내면서 가속화된 비극이 완성되었다. 경찰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온 가족이 ‘가짜 범죄 서사’에 끌려 들어간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살인사건’은 실종됐던 지민이 22일 만에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면서 비로소 끝났다. 하지만 사법 시스템은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경찰의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발표한 뒤 사건을 종결지었고, 수사기관 중 그 누구도 유정과 가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김유정은 그 후로도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법원의 요청으로 유정과 가족들을 감정한 전문가는 심리치료와 거주지 이전 등의 조치가 절실하다고 권고했으나, 경찰은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국가기관의 잘못된 확증편향과 심리 압박이 한 평범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대한민국 사법 현실의 기록이다.
‘자백 맹신’의 현실을 깨뜨릴 법심리학 연구의 결정판
『허위자백』은 사법 시스템의 모순을 고발하는 서사적 논픽션에 머물지 않는다. 사울 카신 교수는 40여 년간 축적한 과학적 연구와 실증 데이터, 실제 오판 사례들을 집대성하여, 인간의 정신이 극한의 심리 압박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나아가 ‘인간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는가’를 넘어 ‘사람들은 왜 그 자백을 그토록 쉽게 믿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물증을 압도하는 자백의 강력한 오염 효과를 파헤친다.
이러한 통찰은 대한민국 사법 현실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김상준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판결문 전수조사 데이터(1995~2012년 항소심 파기 사건 분석)에 따르면, 1심 유죄에서 2심 무죄로 뒤집힌 강력사건 오판 사례 540건 중 31.5퍼센트(170건)가 피고인 본인과 공범의 ‘허위자백’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객관적 물증보다 자백 조서의 증거 능력을 우선시하는 관행이 한국 사법 시스템 내부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허위자백』은 한국의 형사사법제도를 설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인간의 인지적 한계와 시스템의 오류를 직시하게 함으로써,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비극을 막기 위한 법심리학적 토대를 제시한다. 누구라도 피의자가 되어 경찰 조사실에 들어가는 순간 허위자백을 하게 될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 위험을 최소화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를 모색하기 위해 지금 펼쳐 들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책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여러분의 자녀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을 수도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는 허위자백의 정확한 빈도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것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즉 허위자백은 1692년의 세일럼 마녀재판처럼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특히 형사사법 기록이 보관되는 모든 국가에서 자주 일어나며, 무고한 사람들이 재판과 같은 형사사법 현장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직장에서도 허위로 자백하고, 이 모든 것이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특히 더 자주 발생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허위자백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 자발적 허위자백, 순응적 허위자백 그리고 내면화된 허위자백이다. … 자발적 허위자백은 경찰의 압력이나 종용 없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 때문에 자백하는 유형이다. 순응적 허위자백의 경우, 피의자는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거나 신체적 위해나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또는 명시적, 암묵적 보상을 받기 위해 경찰에 굴복한다. … 내면화된 허위자백은 가장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유형의 허위자백은 무고하지만 심리적으로 취약한 피의자들이 순응의 한 방법으로 선택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게 혼란스러워지면서 현실감각을 잃고 자신이 문제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는 경우도 포함한다. 놀랍게도 이런 믿음은 거짓 기억을 동반하기도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사울 카신
존제이형사사법대학 심리학 석좌교수이자 윌리엄스대학 명예교수이다. 1980년대부터 경찰 신문과 자백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선도하며, 오늘날 널리 활용되는 ‘허위자백의 세 가지 유형’ 분류를 정립했다. 또한 무고한 이들이 허위자백에 이르는 심리적 과정과, 허위자백이 판사·배심원·법과학 감정 전문가의 판단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규명하는 실험 연구 설계를 최초로 도입했다. 특히 영상녹화 신문의 효과를 입증한 연구는 세계 각국 법원에서 인용되고 있다.『법정에서 한 자백: 증거와 재판 절차의 심리학』, 『심판대에 오른 미국의 배심제: 심리학적 관점』 등을 비롯해 200여 편에 이르는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미국심리학회(APA), 심리과학협회(APS), 미국 법심리학회(AP-LS), 유럽법심리학회(EAPL)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1부 허위자백이란 무엇인가?
1장 아무도 모르지만 항상 일어나는 일
2장 만들어진 살인자
2부 그들은 왜 자백하는가?
3장 거짓말탐지라는 신화
4장 수사기관의 심리적 전술
5장 허위자백과 할리우드 연출
3부 우리는 왜 허위자백을 믿는가?
6장 법과학적 확증편향
7장 유죄인정협상의 굴레
8장 판사와 배심원의 시각
9장 낙인은 계속된다
4부 온전한 형사사법제도를 향한 제언
10장 미란다원칙의 한계와 대안
11장 정책과 관행의 개혁이 필요하다
부록: 구금 상태에서 신문 녹화를 의무화하는 미국의 주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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