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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
봄싹 | 부모님 | 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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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소멸의 폐허 위에서 흙을 만지는 몸, 끈질긴 생의 싹을 틔우는 시집이다.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는 ‘봄싹’의 ‘리얼리스트 시전詩全’ 네 번째 시리즈로 발간된 조문경의 시집으로, 귀촌이라는 삶의 재배치를 겪으며 체득한 대지의 생태적 순환과 존재론적 허무를 포착해 낸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 속에서 시인의 시선은 화려한 도시의 수사나 낭만화된 농촌의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작대기 하나 사라진’ 시골 마을 노인들의 쇠락해 가는 육체와 소멸해 가는 공동체의 풍경을 정직하게 호명하며,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소멸과 상실의 유한한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허무에 주저앉는 대신 호미를 들고 파슬파슬 부서지는 생생한 흙 빛깔을 마주하는 시인의 손길은 매일 아침 꽃이 피었는지 들여다보며 기쁨을 느끼는 능동적인 ‘살아냄’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박윤규 작가의 담담한 문체와 침략자에게 굴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섬세한 터치로 표현한 박철민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이 매력적인 책이다.

  출판사 리뷰

소멸의 폐허 위에서 흙을 만지는 몸, 끈질긴 생의 싹을 틔우다

초록의 힘으로 허무를 뚫고 나아가는 시
도시의 관념을 걷어낸 자리에 들어선 경이로운 대지의 기록


『제 몸의 허물를 씹는다』는 ‘봄싹’의 ‘리얼리스트 시전詩全’ 네 번째 시리즈로 발간된 조문경 의 시집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귀촌이라는 삶의 재배치를 겪으며 체득한 대지의 생태적 순환과 마주한 존재론적 허무를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 속에서 시인의 시선은 화려한 도시의 수사나 낭만화된 농촌의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작대기 하나 사라진’ 시골 마을 노인들의 쇠락해 가는 육체와 소멸해 가는 공동체의 풍경을 정직하게 호명한다. 더불어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소멸과 상실의 유한한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표제시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에서 보여주듯, 시인은 도착점을 알 수 없는 허공을 향해 ‘오직 공격’하듯 뻗어 나가는 칡넝쿨의 맹렬한 초록 힘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에 온몸으로 반항하는 실존적 주체성을 획득한다. 화장장의 타오르는 뼈에서 세상 처음 보는 흰빛의 허무를 보면서도 지하 식당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비워내는 일상성(「색을 다 거두어낸 흰빛」), 까실한 배추 뒷장을 ‘아프지 않을 만큼만’ 가슴에 폭 안아 묶어주는 미시적인 보살핌(「서리 내린 후」)은 이 시집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허무에 주저앉는 대신 호미를 들고 파슬파슬 부서지는 생생한 흙 빛깔을 마주하는 시인의 손길은 매일 아침 꽃이 피었는지 들여다보며 기쁨을 느끼는 능동적인 ‘살아냄’의 세계로 독자들을 성큼 인도한다.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는 무엇을 담았는가

“이 방법 이외로 없지 않은가” 허무를 건너고 타자의 고통을 함께 앓는 신체성의 미학

허무를 회피하지 않는 투명한 눈과 현상학적 응시


조문경의 시는 목소리가 낮고 담담하다. 그러나 그 바닥에 깔린 사유의 깊이는 서늘하리만치 정직하다. 이 시집은 관념으로만 허무를 노래하지 않는다. 시인은 대상에 덧씌워진 모든 선입견을 걷어내고 대상의 소멸과 부재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허무를 보는 눈’을 지녔다. 여름날의 화려함이 사라지고 말라버린 연대들만 남은 얼음판에서 지나간 존재의 원적을 읽어내고(「겨울 연꽃 못」), 속이 비어 팔 수도 없지만 수명이 다할 때까지 꼿꼿이 서서 씨를 맺는 숫양파의 쓸모없음을 묵묵히 서술하는 시선(「숫양파」)은 삶의 근원적 조건을 회피하지 않는 투명한 의식의 발현이다.

폭력을 거부하는 ‘곁눈질의 윤리’와 연대의 감각

이 시집이 허무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고 윤리적 거처를 마련하는 자리는 바로 ‘타자의 고통과 마주하는 신체적 연대’에 있다. 시인은 전철 옆자리에서 한용운의 시 구절을 넘기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는 정면의 폭력을 행하지 않는다. 대신 고요한 ‘곁눈질’을 통해 타인의 생에 서린 상실과 눈물의 무게를 내 몸의 시각으로 묵묵히 나누어 가질 뿐이다(「전철 옆자리 할머니의 시 읽기」). 마을 회관으로 마실 오는 노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인 삶의 터전으로 일일이 호명하는 태도 역시 타자의 슬픔을 내 인식의 감옥에 가두지 않으려는 환대의 미학을 보여 준다. “작대기 하나 사라졌다”는 담담한 선언 속에는 이웃의 소멸을 자신의 유한한 신체적 감각으로 고스란히 받아 내어 함께 통과하고자 하는 시인의 깊은 슬픔과 존중이 깃들어 있다.

대지의 리듬에 몸을 밀착시키는 생태학적 거주(Dwelling)

존재의 유한성을 깨닫고 타자의 아픔을 알아챈 시인이 도달한 궁극의 과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조문경은 이에 대해 대지의 생태적 순환에 자신의 신체를 동화시키는 ‘정직한 노동의 실천’으로 답한다. 메줏가루를 저어가며 찹쌀고추장을 고아 졸이는 끈질긴 시간 속에서 시인은 “이 방법 이외로 없지 않은가”라고 자문한다(「숨을 섞으려면」). 인간의 노동이 자연의 물리적 시간과 온전히 결합할 때 비로소 상실의 자리에 새로운 생명력이 거듭나기 때문이다.
응달에 버티고 선 겨울의 응어리 속에서 기어이 싹을 틔우겠다는 출판사 ‘봄싹’의 슬로건처럼 이 시집은 세계의 무상함에 온몸으로 반항하며 매일 아침 손전등을 들고 목단꽃과 은방울꽃을 들여다보는 경이로운 일상의 세계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마음 한구석에 차가운 허무의 바람이 부는 이들에게 배추 포기를 가슴에 폭 안아주던 시인의 흙 묻은 손은 우리가 왜 이 질긴 한세상을 기어이 살아내야 하는지 가장 다정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건네는 대답이 될 것이다.

시집 해설에서

허무를 건너는 몸, 사라짐과 되살아남의 시적 윤리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


1. 허무에 직면한 시

언제 허무를 체감했던가. 상실과 고독에 처했을 때였다. 쉼 없이 달렸던 열정이 사그라들고 그 무엇도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마음으로 홀로 남았다는 절망이 고개 들었던 순간이었다. 궁핍한 시대에 세상에 그냥 내던져진 존재라는 실존적 눈뜸, 이후였다. 이 허허로운 공간에서 시 쓰기는 얼마나 공허한가. 조문경의 시는 이 지점에서 다시 눈을 뜬다.
이 시집은 허무에 직면한 순간, 아니 허무에 빠져 침강하며 비로소 갱신하는 몸의 흔적을 담았다. 허무는 죽음과 상실과 쇠락으로 만들어졌다. 죽음은 핏기 거둬 낸 흰빛으로 다가왔다. 상실은 사라진 풍경 속에서 늘 고개 들었고, 세월을 지탱했던 기억들이 무너지며 소리쳤다. 이처럼 허무와 맞닥뜨렸을 때 조문경은 무슨 소리인가 들었다. 또 다른 생명, 감각, 관계가 속삭였다. 이러한 방식을 들어 허무의 극복이라 한다. 혹은 허무의 역설이다.
부질없는 시간으로 가득찬 이 텅 빈 바다에서 조문경은 허우적대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동안 견지했던 삶의 방식이 버팀목이 된 것이다. 그것은 온몸으로 생을 버텨내며 스스로 신성하게 되려는 시인된 자들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어둠에서 시를 건져 올리는 이 숭고한 행위가 이 시집에도 흐르고 있다.
조문경은 이 시집을 묶어 내며 허무를 응시하는 몸을 갖는다. 허무를 건너는 몸이다. 머리로만 허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몸으로 허무의 심연을 통과하고 버텨내려 한다. 인간의 몸은 상처받기 쉽지만 동시에 삶을 살아내는 유일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이별과 망각 속에서 모든 소중한 것들은 사라진다. 그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라지고, 사라져 가는 존재들을 가슴에 품고 시의 언어로 되살려내는 일을 반복한다.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재생하는 순간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집은 허무를 깨치는 현상학적 눈과 허무를 함께 견디는 몸, 즉 시적 윤리와 허무를 살아내는 생태학적 실천을 담고 있다. 이는 조문경의 시를 읽는 세 가지 층위이기도 하다. ‘허무를 보는 눈’은 허무를 회피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면하려는 그의 시적 자세다. 존재의 텅 비어 있음을 정직하고 날카롭게 응시하는 인식 단계를 뜻한다. 세상 겉치레와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상실과 소멸이라는 삶의 근원적 조건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이다.
‘허무를 함께 견디는 몸’은 허무를 홀로 앓는 고독한 감정으로 여기지 않고 타자의 고통과 연대하는 윤리적 단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이 시집에서 몸은 허무의 서늘함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장소이자 타인, 혹은 역사적 타자의 고통을 앓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집 곳곳에서 유한한 삶의 풍경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시인과 마주하게 된다. 나아가 사라져 가는 것들 곁에서 더불어 견디는 상생의 윤리를 공감하게 된다.
‘허무를 살아내는 실천’은 소멸의 순환에 순응하는 삶을 말한다. 생태학적 측면에서 모든 존재의 사라짐(죽음)은 끝이 아니다. 대지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틔우는 거대한 순환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삶의 무상함에 주저앉지 않고 우리가 자연의 유한한 일부임을 인정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일상의 작고 끈질긴 실천들이 이어가는 역동적 풍경을 보여준다.

2. 유한성을 응시하는 감각–‘없음’을 본다는 것

시는 보이는 것보다도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려 한다. 보이는 것은 협소하기 때문이다. 빙산의 일각을 보고 말하는 자를 시인이라 하지 않는 그것도 매한가지다. 시인에게 주어진 능력이기도 하다. 그처럼 시인은 상상력을 통해 허무, 즉 ‘없음’의 역설적 대칭점에 있는 ‘있음’을 보려 한다. 이처럼 조문경은 부재를 감각하고, 없어지는 것에 대해 응시하며, 사라짐을 기록하려고 한다.
현상학적 환원은 대상에 덧씌워진 선입견과 판단을 중지하고 우리 의식에 나타난 사태 자체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 있다. 조문경의 시선은 이러한 현상학적 투명성을 구현한다. 그는 생명 얻은 세상 만물이 소멸하고 만다는 자연의 이법을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그 뒤에 남겨진 텅 빈 공백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정면으로 대면할 뿐이다. 이처럼 표제 시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는 존재론적 무無를 향한 시인의 인식을 담고 있다.

칡넝쿨
공격이다
초록순이 뻗는다
칭칭 감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자세일 뿐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직각으로 세운

허공을 향해 뻗다가
급히 방향을 꺾는,
저 유연한 몸짓
잡을 곳이 없을 때는
둘이 몸을 꼬아
더 멀리 나아갈 힘을 만든다

가려는 곳은 어딜까
아니
가려는 곳을 묻는 일 자체가
칡덩굴의 정오에는
허무함일 뿐

꿈쩍도 않는 볕 기둥을 뚫고
허공의 혀를 씹는다
오직
공격
―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에서

칡넝쿨은 초록의 힘을 뻗어 맹렬히 전진한다. 뱀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려’ 날카롭게 곤두선다. 이들 시적 주체가 향하는 곳은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곳은 허공을 향해 있지 않다. 그들의 식물적, 동물적 상상력은 유연하다. 멈추지 않고 그것도 급히 방향 전환할 줄 안다. 아예 불가능한 진로 앞에서도 상상력은 ‘더 멀리 나아갈 힘을 만’든다. 그때까지도 도착점을 알 수 없다. 이 모든 몸짓이 ‘허무함일 뿐’이라는 절망과 상실을 실존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색을 다 거두어낸 흰빛」에서 시인은 소멸의 극단인 화장장 풍경을 끌어와 삶과 죽음의 실제를 보여준다. 유족들의 통곡과 무너짐을 뒤로한 채 불타오르는 뼈에서 ‘흰빛’의 허무를 드러낸다. 그것은 지하 식당에서 설렁탕을 먹는 일상성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실존적 허무는 「꽃이 진다」에서 시인 자신의 필연적 소멸로 확장한다. 시인은 감꽃, 백합, 능소화 등이 저마다 툭툭 떨어지고 쪼그라드는 소멸의 현상을 묵묵히 서술한다. 이러한 허무의 인식은 “어떤 모습으로 사라질까/난”이라는 결구에서 더욱 강화된다. 마찬가지로 「숫양파」에서는 속이 찬 암양파 곁에서 ‘속은 비고 못된 심지 있어’ 팔 수도 없는 숫양파를 통해 허무의 구체적 형상을 담는다. 쓸모없음과 비어 있음이다. 「겨울 연꽃 못」에서는 여름날의 화려함이 사라지고 말라버린 연대와 부들만 남은 얼음판 속에서 지나간 존재를 기억해 내려는 역설적 응시를 보여준다.
이처럼 조문경이 응시하는 허무의 풍경은 필연적으로 사르트르와 카뮈가 도달했던 사유의 거처로 우리를 이끈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가리켜 본질이 비어 있는 채 세상에 내던져진 실존, 즉 ‘그 자체로 텅 빈 존재無’라고 규정했다. 본질이 비어 있기에 인간은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창조해야만 하는 형벌을 선고받는다. 카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부조리라는 거대한 허무의 장벽 앞에서도 자살이나 신앙이라는 종교적 회피를 거부한다.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세계의 무상함에 온몸으로 반항할 것을 촉구했다. 그처럼 조문경도 ‘오직 공격’을 외치며 멈추지 않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도시에서 바라봤던 농촌의 낭만적 관념을 걷어내고 ‘배추를 묶고(「서리 내린 후」)’, ‘메줏가루를 휘젓는(「숨을 섞으려면」)’ 척박한 농촌 현실 속에서 실존적 주체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풀도 밭을 경작하고」에서 잡풀이 우거진 묵밭에 호미를 집어넣어 생생한 흙 빛깔을 마주하는 것처럼 신체적 실천으로 발현된다. 또한, 시인이 상실과 죽음의 한복판에서 기어이 생의 환희를 건져 올리는 방식은 일상에서 구체화된다. 「작대기 먼저 들어선다」에서 쇠락해 가는 시골 할매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소멸해 가는 공동체의 숭고함을 놓지 않는다. ‘작대기 하나가 사라지는’ 절대적인 허무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는다. 다음 날 다시 밭으로 나가 땀을 흘리는 농부들의 정직한 신체성은 카뮈가 꿈꾸었던 ‘부조리한 영웅’의 실체화다.
조문경의 시는 푸코가 말한 ‘살아내는 기술Art of Living’이다. 허무가 세계를 지배할지라도 흙을 만지고 배추를 아프지 않게 묶어줄 수 있는 정직한 손과 발(몸)을 응시하는 것이다. 자기 배려의 존재 미학이다. 인간은 아직도 매일 아침 꽃이 피었는지 들여다보며 손전등을 켜는 능동적인 일상의 세계로 성큼 한 발 내딛는다. 그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무너지는 허무의 폐허 위에 끈질긴 생명의 순이 다시 돋아난다는 경이로운 이야기가 조문경의 시다.

3. 공존과 연대의 감각–타자의 고통을 ‘앓는다’는 것

현상학적 응시를 통해 세계의 유한성을 깨달은 시인은 이제 나만의 고독한 허무에서 나와 타자의 고통과 마주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의 고통에 무한 책임을 느끼는 데서 윤리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조문경에게 이 윤리는 ‘신체적 연대’를 통해 발현된다. 노화하고, 병들고, 사라져 가는 시골 노인들과 역사 속 소외된 타자들의 슬픔을 시인은 자신의 몸으로 느끼고 통과해 낸다.
조문경의 시에서 ‘공존과 연대의 감각’은 인간을 마비시키는 허무주의에 맞서 생의 의미를 복원해 내는 강력한 실존적 응전 방식이다. 시인은 홀로 고립되어 앓는 데카르트식의 독백적 자아에서 나와 유한하고 상처받기 쉬운 타자들과 세계 속에서 얽혀 사는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방식은 ‘타자의 고통을 앓는 것’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는 관념적인 동정이나 도덕적인 의무감을 넘어서는 것이다. 타자의 슬픔과 쇠락을 자신의 유한한 신체적 감각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어 함께 통과하는 실존적 윤리를 뜻한다.

가파른 언덕길 작대기 앞세워
회관 마실 오신다
키 작은 피밭 할매
그중 젊은 방앗집 할매
힘 좋은 새터 할매
넘어져 꼼짝 않던 호미댁 할매
귀 어두운 공자동 할매
진주 할매
별터 할매
정골 할매도
십이월 초
뜬금없이 영감 얘기하던
유촌 할매
작대기 하나 사라졌다
-「작대기 먼저 들어선다」 전문

시인은 마을 회관으로 마실 오는 노인들 이름을 일일이 호명한다. 피밭 할매, 방앗집 할매, 새터 할매, 호미댁 할매 등 구체적인 삶의 터전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존엄한 역사다. 그들은 모두 쇠락해 가는 육체를 이끌고 ‘작대기 앞세워’ 언덕길을 오르는 신체적 한계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줄에서 시인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작대기 하나 사라졌다”고 선언한다. 공동체 일원이었던 노인의 죽음을 시인은 거창하게 애도하지 않는다. 다만 매일 눈에 밟히던 신체적 기표인 ‘작대기’의 부재로 드러낸다. 이 상실감은 타자의 소멸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조문경 시의 윤리적 실체다.
시인에게 타자의 고통은 요란한 비명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의 사소하고 고요한 순간, 눈에 잘 띄지 않는 흔적으로 숨어 있다. 시인은 이를 날카롭고도 따뜻한 ‘곁눈질’을 통해 포착한다. 이 곁눈질의 윤리는 타자의 삶에 새겨진 비밀을 환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책장 넘기지 않고 한용운 「비밀」만 읽고 있다

-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몇 번 곁눈질 해도
거기에 머물러 있다
-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구절에 평생이 흐른다
-「전철 옆자리 할머니의 시 읽기」 전문

시인은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용운의 시 한 구절에 멈춰 있는 노파를 가만히 바라본다. 다가가 말을 건네거나 섣불리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그것은 고요한 멈춤이다. 시인이 직감한 것은 “한 구절에 평생이 흐른다”는 명제다. 이는 다시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는 시구로 변주된다. 타인의 생에 서린 상실과 눈물의 무게를 내 몸의 시각으로 감각하는 순간을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존중이다. 타자의 고통을 가만히 앓아내는 시인의 방식이다. 타인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이 공감에서 삶의 바탕이 되는 연대의 소통을 가늠할 수 있다.
한용운이 본 것을 시인도 인식한 것이다. 무엇을 본 것일까.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통과 마주했을 때 그를 내 지식이나 잣대로 ‘정면 응시’하여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에 타자가 내뿜는 존재의 호소에 무조건적인 책임을 지라고 말한다. 조문경의 시에서 노파의 눈물을 빤히 쳐다보며 참견하지 않고, 곁눈질을 통해 그 슬픔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태도는 타자의 신비와 존엄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레비나스식 환대의 윤리라 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도 대상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정복하려는 인간 중심적 시선에는 아우라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에 시인이 자연의 풍경 속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함을 자각하고 사라진 풍경 속 주변부에서 곁눈질로 만물의 순환을 조심스럽게 살필 때 드러난다고 한다. 대상과의 윤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며 자연을 경외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진정한 미학적, 실존적 충격은 정면에 배치된 주인공이 아니라고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말한다. 사진의 구석에 찍힌 누군가의 낡은 신발이나 슬픈 손짓 같은 ‘주변부 기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의 마음을 찌른 것은 지하철이라는 공간 전체, 이성적 공감인 스투디움Studium이 아니라 곁눈질로 포착한 할머니의 멈춰진 시선과 한용운의 시 구절, 강렬한 주관적 자극인 푼크툼Punctum이었다. 주변부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읽어내는 조문경의 응시 방식이다.
타자의 슬픔을 내 인식의 감옥에 가두지 않기 위해 정면의 폭력을 거부하고 비켜선 시선, 곁눈질로 타인의 평생을 고요히 품어 안는다는 조문경의 시적 인식은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이 지닌 서늘한 도덕적 책무를 바르트와 벤야민의 미학적 시선을 통해 농촌 일상의 언어로 따뜻하게 풀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자의 고통을 앓는 행위는 언제나 아름답거나 숭고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인간이 지닌 가장 이기적이고 나약한 한계와 마주하며 발생하는 죄책감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 죄」에서 시인은 기도마저 메말라가게 만드는 어머니의 긴 투병 생활의 지난함을 고백한다.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인간적인 도덕적 괴로움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고통받는 타자(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자신의 내면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가감 없이 ‘마지막 죄’로 승인한다. 이때 시인의 신체는 스스로 상처 입고 앓아눕는 실존적 주체의 전형을 보여 준다.
조문경의 시에서 ‘타자의 고통을 앓는다’는 것은 타자를 불쌍히 여기는 감상적 유희가 아니다.시인 역시 언제든 부서지고 사라질 수 있는 유한한 몸을 가졌음을 자각하고 늙고 병들어 가는 이웃과 어머니의 슬픔을 내 감각으로 이어받아 시적 언어로 복원해 내는 실천이라 할 수 있다.

4. 허무를 살아내는 생태적 감각–‘살아냄’이라는 것

허무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을 가졌고, 그 아픔을 타인과 나누는 몸을 정립했다면 궁극적으로 이 시집에 남긴 조문경의 시적 과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 조문경은 대지의 생태적 순환에 자신의 신체를 동화시키는 ‘노동의 실천’으로 답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하기Dwelling’다. 단순히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자연을 보살피고 가꾸는 행위다. 시인은 흙을 만지고, 풀을 뽑고, 전통 음식을 만드는 일상의 기술을 통해 허무의 폐허 위에 생명의 집을 다시 짓는다.
삶의 재배치를 통해 허무를 극복(「귀촌」)하고, 비어 있음이 자연과 결합할 때 충만하다는 사실(「적막」)을 몸으로 깨달았다. 죽음 같은 계절을 통과(「한파」)해 일상의 희열을 맛보기도 하고(「살면서 이렇게 신났을까」) 비로소 잔잔한 삶의 안온함 속에 거주하게 된다(「낮달맞이」). 이는 허무의 극복 방식이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몸들과 살아가는 공동체의 실천이기도 하다.
시인은 고된 노동을 두고 “이 방법 이외로 없지 않은가”라고 자문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이질적인 재료들이 만나 발효라는 새로운 생명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직한 신체적 노동이 물리적 시간과 온전히 결합해야만 한다. ‘숨을 섞는 것‘처럼 생태적 기술은 자연 사물과 인간의 신체가 밀착하여 우주의 리듬을 일상에서 구현해 내는 끈질긴 삶의 양식이다. 자연과의 상생은 대상의 아픔을 헤아리는 미시적인 손길에서 완성된다.

무릎 꿇고
두 팔 벌려 이파리 모아 오므리고
가슴에 폭 안아
짚 돌리고 꼬아 옆에 꽂아 넣는다
아프지 않을 만큼만
묶어
―「서리 내린 후」에서


이 사소하고 깊은 배려는 가시 돋친 배추 뒷장의 까실까실함을 고스란히 느끼는 시인의 피부 감각에서 비롯된다. 대상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생명 대 생명으로서 적절한 거리와 온도를 유지하며 돌보는 이 신체 실천은 생태적 윤리의 극치라 할 만하다. 이러한 구체적 노동과 보살핌의 끝에 마침내 허무의 자리에 찬란하게 피어나는 생의 환희가 기다리고 있다. 삶의 유한성과 허무를 온전히 통과한 주체만이 누릴 수 있는, 대지가 선사하는 순수한 생의 복원이다.

자고 나면 피는 꽃들
자다가도 일어나
손전등 들고 목단꽃 보러 간다
고추모 심은 밭 궁금하고
은방울꽃 피었는지
들여다보고
하나 놓은 빈 벌통
벌 들었는지
기쁨이 몸 안 가득
-「살면서 이렇게 신났을까」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조문경
2002년 『삶글』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항상 난 머뭇거렸다』, 『노란 장미를 임신하다』, 『엄마 생각』, 『해바라기 뒤통수를 봤다』를 펴냈다.

  목차

제1부 어서 빨리 받아 적으라는 듯

나비 떼가 왔는데 11
손님 12
첫 손님으로 네발나비 오다 13
나 없는 사이 14
상사화 15
고양이와 나눠 먹다 16
전철 옆자리 할머니의 시 읽기 17
소매치기 18
색을 다 거두어낸 흰빛 19
방아깨비 빛 방울꽃 씨를 뿌리다 20
코스모스 앞에 21
제 몸의 허무를 씹는다 22
더 이상 생각 없다 25
저녁놀은 농부의 등 26
풀도 밭을 경작하고 27

제2부 풍경이 되지 못한 채 곁눈질로

꽃이 진다 33
다람쥐 삼일장 34
이 세상 뼈대 35
흙 도둑 36
바람에 꽃잎 흔들리자 37
숫양파 39
사라진 풍경 속에서 40
풀을 뽑으며 41
그냥 42
노랑 선 씀바귀 43
간장 소금 44
가난한 저축 45
서리 내린 후 46
비오는 날 47
숨을 섞으려면 48
고양이와 물까치 50
자갈풍 51
어떤 엄연嚴然 52
호랑나비 애벌레의 청빈淸貧 53
씨는 꽃이 져야만 보인다 54
또 다른 시간을 보다 55
겨울 연꽃 못 58

제3부 그 질긴 한세상

잔盞 63
안부 64
참나무 타는 냄새 먹다 65
요각 인사 66
짹지칼 68
며느리와 봉숭아 꽃물 들이다 69
호다리 콩콩 70
문득 그대 생각났다 71
마지막 죄 72
눈앞에 살아 있다 73
소 75
니캉 내캉 사재이 76
시골엔 달이 없겠다 77

제4부 작대기 하나 사라질 때까지

귀촌 81
적막 82
삼십 분간 83
바더리는 그렇게 84
달마중 85
흙집 천정을 뜯으며 86
한파 87
봄볕 88
살면서 이렇게 신났을까 89
다람쥐 홍시 먹는 90
여기 계신 저 산 봄꽃 91
낮달맞이 93
좋을 때란 95
한나절 쪼그리고 앉아 96
산수유 나무 팔려가다 97
이야기 끝에 99
호미댁 할매 100
장연 아재 101
참 따뜻한 방 102
작대기 먼저 들어선다 103
여백 105

해설 허무를 건너는 몸, 사라짐과 되살아남의 시적 윤리(이민호)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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