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임창연 시인이 주남저수지라는 거대한 자연을 하나의 도서관(‘주남도서관’)으로 명명하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냈다. 시 「청둥오리의 독서모임」에서 시인은 저녁 무렵 둠벙 옆에 모인 청둥오리들을 의인화하여 ‘공감의 독서모임’을 연다고 노래한다. 이들이 읽는 것은 종이책이 아닌 ‘하늘의 구절, 수면의 비유’다. 인간이 종이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한다면, 철새들은 자연과 생명을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다.
특히 본문 앞에 “도서명: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 저자: 주남저수지 남쪽 둠벙 연합 / 반납예정일: 다음 비가 오기 전”과 같은 가상의 서지 정보를 배치함으로써, 시집 전체가 주남저수지의 생태적 가이드북 역할을 하도록 위트 있고 정교하게 설계했다.
출판사 리뷰
"철새들이 스스로 발행인이자 저자가 되는, 해설자 없는 백과사전"
"반납예정일: 다음 비가 오기 전 | 주남도서관 야외 열람실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주남 도서관은 책이 한 권도 없는 도서관이다. 점토를 굽거나, 대나무를 엮거나, 숲을 베어서 만든 책이 한 권도 없다. 우리가 아는 도서관이 생명의 터 무늬를 지우고 세운 것이라면, 이 도서관은 뭇 생명들이 쓰는 몸짓 언어로 가득하다. 도서관을 나와야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책을 덮어야 보이는 문장들이 도도하게 펼쳐진다.
― 반칠환 시인
나는 이제야 알았다. 주남저수지에 이토록 멋진 도서관과 사서가 있다는 사실을. 재밌는 것은 주남도서관에는 종이책이 한 권도 없다는 점이다. 그 흔한 논어, 맹자도 없고, 성경도 불경도 없다. 김수영의 시집도 없고, 한강의 소설책도 없다. 종이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듯한 도서관 건물도 없다. 주남저수지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우주적 상상 혹은 인문적 사유이다. 작은 벌레 한 마리, 사소해 보이는 풀꽃 하나가 모두 드넓은 우주와 속 깊은 인문학적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한다. 주남도서관은 비록 종이책도 건물도 없지만,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
― 이형권 문학평론가, 충남대 국문과 교수
▷ 철새들이 스스로 발행하고 저자가 되는 곳, ‘주남도서관’
임창연 시인이 주남저수지라는 거대한 자연을 하나의 도서관(‘주남도서관’)으로 명명하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냈다.
시 「청둥오리의 독서모임」에서 시인은 저녁 무렵 둠벙 옆에 모인 청둥오리들을 의인화하여 ‘공감의 독서모임’을 연다고 노래한다. 이들이 읽는 것은 종이책이 아닌 ‘하늘의 구절, 수면의 비유’다. 인간이 종이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한다면, 철새들은 자연과 생명을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다.
특히 본문 앞에 “도서명: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 저자: 주남저수지 남쪽 둠벙 연합 / 반납예정일: 다음 비가 오기 전”과 같은 가상의 서지 정보를 배치함으로써, 시집 전체가 주남저수지의 생태적 가이드북 역할을 하도록 위트 있고 정교하게 설계했다.
“서가 없이도 책은 읽힐 수 있으며 / 목소리 없이도 /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중에서
▷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 습지의 갈대와 물고기가 대신 읽다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이기심과 개발 욕망으로 파괴되는 생태계의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시 「람사르 각서 8조 ―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는 국제적인 습지 보호 규약인 람사르 협약을 모티프로 삼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서명자들의 약속은 개발과 도로 아래 파묻혔고, 사계절의 순환은 비정상적인 ‘다섯 개의 계절’로 변해버렸다. 인간이 약속을 저버리고 문서를 읽지 않을 때, 습지의 갈대들이 대신 문서를 필사하고 물고기들이 구두점 없이 이를 해석하며 자연의 자정 능력을 이어간다. 시인은 이 비극적 현실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을 촉구한다.
▷ 흙탕물 속 시련을 견디며 탄생하는 가장 단단한 생명의 이야기
시집의 절정을 이루는 「흙탕물 제본소」는 책을 완성하는 ‘제본’ 과정을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역설적 메커니즘으로 시각화했다.
가장 단단하고 깊은 생명의 가치는 깨끗한 물이 아닌, 온갖 갈등과 흔들림이 섞이는 ‘흙탕물 속’에서 온다. 갈대의 뿌리, 낙엽의 조각, 사라진 날갯짓이 진흙 속에서 묶이고 썩으며 마침내 새로운 발아를 준비하는 과정은, 시련을 극복하고 피어나는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이자 진리의 모습이다. 시인은 나아가 「물비늘의 각주」, 「수련의 표지는 물속에서 써진다」 등의 작품을 통해 생명의 진짜 아름다움과 진리는 늘 보이지 않는 낮은 곳(물속, 각주)에 숨어 있음을 역설한다.
▷ 자연이라는 거대한 장서 중 엄선한 60권의 생태 안내서
임창연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단순한 창작자를 넘어, 주남도서관을 구석구석 안내하는 유능한 ‘사서(Librarian)’이자 ‘북 가이더’를 자처한다.
주남저수지의 진흙 밑바닥부터 수면의 물결, 하늘의 허공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권에 달할 자연의 장서 중 시인이 고르고 골라낸 것은 단 60권(60편의 시)이다. 이 60편의 시는 각각 자연을 베개 삼은 시적 비유와 깊은 암시로 채워져 있어, 오염된 세상 속에서 맑은 영혼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인간, 생명과 우주의 신비를 고스란히 배달해 줄 것이다.
이 백과사전에는
부록도 없고, 판권도 없다
해설자는 사라졌고
철새들 스스로가 발행자이며 저자이다
― 「해설자 없는 백과사전 ― 철새」 부분
해 질 무렵
청둥오리들이 모여든다
물풀 사이, 잔잔한 둠벙 옆
그들만의 독서모임이 열린다
낮 동안 읽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하늘의 구절, 수면의 비유
철새가 흘리고 간 낱말의 잔해들
수컷은 목을 흔들며 표현하고
암컷은 날개로 문장의 리듬을 짚는다
때로는 물장구로, 때로는 짧은 울음으로
비평 아닌 공감의 독서를 나눈다
―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부분
8조,
습지는 생명체의 서식처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람사르 문서 속 그 문장은
한때 사람들의 책상 위를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그 문장은 읽히지 않는다
개발의 이름으로 덮인 땅
도로 아래 파묻힌 물길
그 안에 실려 있던 다섯 개의 계절
철새는 돌아오지만
서명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펜 끝의 책임은 종이 위에만 남고
저수지의 침묵은
그 문장의 진심을 대신한다
― 「람사르 각서 8조 ―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창연
부산에서 태어나 1998년 무크지 《매혹》으로 시 등단하고, 2015년 《한비문학》으로 평론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버지 뿔났다』(2017,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사차원 놀이터』(2022,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외 4권이 있으며, 디카시집으로는 『화양연화』(2016)가 있다. 전 경남문인협회 부회장과 마산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남시인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경남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경남문학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방가르드》 발행인이자 창연출판사 및 창연문장 넥서스 대표로 있다.
목차
시인의 말 ― 주남의 숨결을 빌려 쓴 문장들 5
1부 물 위의 책장들
부레옥잠이라는 오래된 소설 12
갈대는 언제 책장을 넘기는가 14
수련의 표지는 물속에서 써진다 16
안개는 띄어쓰기 없이 출간된다 18
물비늘의 각주 20
흙탕물 제본소 22
창포꽃의 재인쇄 24
바람이 필사한 저녁 26
물수제비의 여백 28
해 질 녘의 탈색본 30
진달래, 절판된 산문집 32
쑥의 표지디자이너 34
버드나무 옆 인문학 서가 36
해오라기와 갈대의 공동 저작물 38
저수지 깊은 곳엔 장정되지 않은 말이 있다 40
2부 새들이 쓰는 책
기러기의 퇴고 44
두루미는 책을 들고 북쪽으로 떠난다 46
백로는 문장을 날개에 묻는다 48
흑두루미의 영문판 50
논병아리의 도서관 이용 기록 52
청둥오리의 독서모임 54
쇠오리의 음독 일지 56
철새등록부 제187-기러기 58
람사르 각서 8조 ― 인간이 읽지 않는 문서 60
비둘기는 연체료를 내지 않는다 62
황새의 절판 선언 64
왜가리는 지도를 대출했다 66
물닭, 습지학 개론을 필사 중 68
새의 이동경로는 장르를 넘는다 70
해설자 없는 백과사전-철새 72
3부 주변 주민과 도서관 이용자들
농민의 민원서, 두루미의 탄원서 76
땅을 읽는 남자와 하늘을 읽는 새 78
대출 연체된 물길 80
철새보호구역 반납요청서 82
신방초등학교 아이의 탐조 일기 84
길 잃은 관광버스와 연체된 시간 86
어민의 그물은 북엔 없었다 88
철책과 도서관 사이 90
물고기와 인간의 공저 92
산책자들의 필사본 94
사진작가의 망원경은 책갈피다 96
습지를 가로막는 보도자료 98
철새 해설사의 브리핑 노트 100
유기견의 습지 독후감 102
겨울에는 어른도 그림책을 빌린다 104
4부 숨겨진 도서관, 다시 쓰는 서가
동판저수지에서 발견된 지도 108
창원 단감도서관 분관 사건 110
의창구 곤충목록 102종 112
왕잠자리와 물방개의 쪽글 교환 114
돌다리는 말하지 않는다 116
북면에서 유실된 생물도감 118
사라진 나비도서관 120
곡저의 고문서관 122
모기와 장구벌레의 대화록 124
청동오리, 끝내 반납되지 않은 책 126
공룡알 도감은 아직 반납되지 않았다 128
주남의 유령사서 기록 130
책 읽는 붕어의 전설 132
미나리밭에서 열린 낭독회 134
폐관 직전의 대출자 136
해설┃이형권
자연책을 읽어주는 시인 혹은 사서의 시편들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