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국가안보 및 핵무장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
- 전작권 환수 80.3%
- 핵무장 동의 83.5%
- 핵잠수함 추진 76.3%
- 미국은 동맹국이다 23.0%
- 미국의 핵우산 신뢰 24.5%
격월간 《사상계》 7·8월호는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사라지고 있는 사실상의 공위시대空位時代와 815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한미동맹과 핵무장 여부의 관점에서 물었다.
출판사 리뷰
◇ 연재 소개
다시 경계에서 말한다_조한혜정, 우에노지즈코
희수를 맞은 1948년생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이 23년 만에 다시 주고받는 서간문.
세대 간 마니또_장혜영, 박은정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마니또로 만난 법학자 박은정과 정치인 장혜영, 세대의 담장을 넘나드는 다정한 서간문.
몸과 삶_배서영
몸은 곧 삶, 삶은 곧 몸
몸과 삶에 귀 기울여 지어가는 문명전환 에세이
S.O.S._현경
Soul of Seoul, ‘서울의 소울’에 대해
한 살림이스트salimist가 통찰한 인문학적 견해
믿고 보는 작가 현경의 영적 명상 에세이
무문관無門關_이철수
이 화백은 ‘도장 깨기’를 좋아한다.
화두든 공안이든 고승이든 부처든 부닥치면 깨고 나간다.
보리본유菩提本有, 깨달음은 본래 갖추고 태어난다는 말이니 두려울 게 뭐 있으랴 하고.
남송 때 만들어진 선문답집 『무문관』을 사유하고 사족하여 《사상계》에 올린다.
신동학에세이_구해우
문명전환의 시대에 동학을 중심에 놓고
중도사상의 가능성과 역할을 깊게 조명하며 한라산에서
사유하며 사는 신문명학자의 이야기
神學에서 信學으로_이은선
무교, 불교, 유교, 동학 등을 아울러
한국 종교문화사를 통합적으로 탐구하며
횡성 산골에 사는 호학자好學子의 신학이야기
몽상가들의 낙원_이정하
정형화된 삶의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대안적 삶을 구가하는
청년들을 소개하는 연재물
외 다수
◇ 작가(사상계) 소개글
《사상계》는 1953년 장준하 선생께서 창간하시고 1970년 5월에 폐간된 종합잡지입니다.
2025년, 55년 만에 복간해 계간을 거쳐 올해 2026년 격월간으로 전환합니다.
《사상계》는 문명전환종합지이자 지성인반려잡지입니다.
25년 봄호(통권 206호) 특집: 응답하라 2025!
25년 여름호(통권 207호) 특집: 불이야不二也!
25년 가을호(통권 208호) 특집: 아나키즘을 호출하다!
25년 겨울호(통권 209호) 특집: 행복이 항복한 나라, 대한민국
26년 1·2월호(통권 210호) 특집: K-K-K-K-K 5K, OK?(한류특집)
26년 3·4월호(통권 211호) 특집: 외계인(이주민특집)
26년 5·6월호(통권 212호) 특집: 신오적, 마피아를 해부하다!
26년 7·8월호(통권 213호) 특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5년 1년간은 계간지로 네 번 나왔는데 서점에는 안 보내고 정기구독만 받았습니다. 26년 올해부터는 진용을 정비하고 시스템을 일신하여 격월간으로 여섯 번을 내고 서점에도 처음 선을 보입니다.
*26년 한 해동안 표지1과 표지4를 이철수 화백의 ‘무문관無門關’ 판화와 안상수 선생의 한글 타이포그라피로 장식합니다.
복간 思想界(사상계)의 일곱 특징
1. 세계 최초 앞뒤가 따로 없는 잡지
2. 세계 최초 소장용 잡지 별도 제작
3. 지역에서 만드는 지역중심형 잡지
4. 문명전환을 위한 지성인 반려잡지
5. 우리말글을 살려쓰는 세종표 잡지
6. 자자손손 볼 수 있는 대물림 잡지
7. 재생지 사용 및 색채 인쇄 최소화
복간 思想界(사상계)의 일곱 주제
1. 정치. 기존 정치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혁명적 대안 제시
2. 경제. 성장 중심 경제에서 탈피할 대안적 경제 체제 구축
3. 사회. ‘계몽의 계몽’에 바탕한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 건설
4. 문예. 문학과 예술의 르네상스를 통한 시민 삶의 질 구현
5. 교육. 문명전환을 위한 생태전환 교육과 대안교육 활성화
6. 생태. 기후재난 극복을 위한 인간비인간의 협업체계 구축
7. 건강. 의료 및 복지 사각지대 보완을 통한 건강시대 구현
◇ 권두언
‘진리’가 아닌 ‘진영’을 묻는 시대
조성환(본지 편집주간)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미화하지 않는다.
미화하는 것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대저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슬픔과 비통으로 눈물을 흘려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상례喪禮를 치러야 한다.
- 노자 『도덕경』 제31장
‘인간’을 물은 한강
2024년 겨울,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을 접했을 때 나는 그녀가 ‘진정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강연 내용이 ‘인간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묻고 있다. 인간의 폭력성은 순자를 연상시키고, 그것을 거부하려는 성향은 맹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한강작가와 나의 차이는 한강은 맹자나 순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인간을 얘기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연구자와 한강의 차이이다. 철학연구자는 철학자의 텍스트를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려 하지만, 한강은 그런 매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인간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5·18과 마주한다. 그녀에게는 5·18이라는 역사가 텍스트이고,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인간을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은 너무나 컸다. 그러나 그 대가는 노벨상으로 돌아왔다.
5·18이 지구적으로 확장되면 ‘전쟁’이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미국·이스라엘-이란전쟁 역시 인간을 묻게 한다. 왜 전쟁은 끊이지 않을까? 왜 인간은 이토록 잔인한가? 왜 우리는 남의 고통에 무감각할까? 해초와 승준, 동현 활동가가 가자로 향하는 항해를 떠난 것도 이러한 물음 때문일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현장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현장을 보기 위해서.
국민과 시민 사이
하지만 그 대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외국에서 받은 폭력과 고통은 물론이고, 국내 네티즌들의 시선도 따가웠다. 국가에 민폐라는 것이다. ‘세금 낭비’와 ‘국법 무시’라는 비판과 함께 ‘태도 논란’이 제기되었다. 무사히 귀환하게 해 준 정부에 먼저 감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초는 ‘세계시민’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저는 세계시민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고요. 제가 살고자 하는 삶의 범위는 국내법이 정한 부당한 규제보다 더 커요. 국제법을 보고 움직여야 하죠. 그래서 앞으로도 항해를 계속할 거라고 말하고 있어요.”(시사, 〈대체 팔레스타인을 왜 갔냐고요?〉)
국가주의와 세계주의가 부딪히는 장면이다. 동학·천도교 식으로 말하면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세계일가世界一家의 충돌이다. 국가주의만 강조하면 배타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세계주의만 강조하면 한국과 같은 분단국가에서는 불안감이 고조될 것이다. 국가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이자 우리의 인식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주의와 세계주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양자는 양자택일의 문제인가, 아니면 양행겸전兩行兼全이 가능한가? 또는 다른 화쟁의 길이 있는가?
피스모모의 문아영대표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팔레스타인 상황만 보더라도 국가가 없으면, 나라를 잃어버리면 너무 힘들어지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국민국가의 틀에만 고정되어야 할까요? …… 국민의 정체성과 시민의 정체성이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특집, 〈삶의 층위에서 평화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이에 대해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구정은은 세계시민의 역할을 강조한다. “세계시민의 힘은 생각보다 늘 강해요.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민간인 학살과 민간인 피해,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세계시민들이 감시했죠. 이스라엘에서도 그 내부의 민주주의가 남아 있던 시절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악행을 세계에 알리는 게 이스라엘 자국민들이었잖아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2009년 무렵부터 무너진 것 같아요. 내부의 민족주의나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극우화되어 가는 거죠.”(특집, 〈오늘의 전쟁을 말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단연 국가주의가 대세였다.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는 애국교육과 김일성을 돼지로 그리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야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대학에서 ‘세계시민교육’ 과목을 맡고 있다. 그것도 필수과목이다. 지금 학생들은 세계시민 의식을 의무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혹스럽다. ‘세계시민’을 배우지도 않은 내가 세계시민을 가르쳐야 한다니……. 내가 받은 교육과 내가 가르치는 교육이 너무나 다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세대 간 딜레마’일지 모른다.
‘진리’를 묻는 도법
지난 5월 25일, 지리산 실상사에서는 《사상계》에서 기획한 ‘화쟁대담’이 있었다. 도법, 이남곡, 이병철 세 분을 모시고 ‘전쟁의 국가에서 화쟁의 국가로’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도법스님은 ‘진리’를 화두로 꺼냈다: “왜 우리는 근본적인 물음을 묻지 않는가? 언제 어디서나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진리’인데, 왜 진리를 묻지 않는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대학에서도 ‘진리’를 입에 담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철학을 하는 나조차도 진리에 회의적이다. 왜 그런가? 하나는 진리보다는 실용이나 성장이 우선인 풍토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리를 말하면 진영으로 재단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는 이제 진부한 말이 되었다. 아니 금기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진리가 사어死語가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근본적인’ 것은 너무나 느려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추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K-무비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순수에 대한 열정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도법스님도 다시 진리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진리는 ‘생명평화무늬’로 형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확실히 생명평화무늬는 진영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상접相接의 진리’를 이미지화하였을 뿐이다. 나는 스님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이유는 속세와 한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속세에 매몰되다 보면 진리는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강작가가 물었던 것도 ‘인간 본성’이라는 진리가 아니었던가?
신학자 조민아는 예수의 평화는 ‘느린 평화’라고 하였다. “그의 평화는 언제나 느리고 보잘 것 없고 가난하다. 안보 대신 공존을, 효율 대신 돌봄을, 편의 대신 더딤을 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몬 베유는 신의 힘을 인간의 힘과 대비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신은 지배하기보다는 물러남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낸다. 신의 전능은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내려놓는 자유로움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한 행위는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아닌 것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비운 행위’이다.”(조민아, 〈인간의 힘과 하느님의 힘〉)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형태의 힘과 행위를 ‘덕德’이라고 하였다. 노자老子는 하늘의 덕은 비움의 덕[孔德]이고, 최고의 덕은 덕처럼 보이지 않는다[不德]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뭔가 결여되고 느려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 그 덕은 진정한 덕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다.
‘진영’에 묻힌 현실
이번 호에는 특별히 선거 직후의 정세를 반영하여 《한겨레21》 이재훈편집장과 《주간조선》 박혁진편집장을 필자로 모셨다. 두 분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선거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해 주었다. 이재훈은 “진영 논리의 승리로 양당 체제가 강화되었다”는 평가를 하였고(이재훈, 〈양당정치, 어떻게 균열을 낼 것인가?〉), 박혁진은 “진영의 문법으로는 청년의 분노를 읽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박혁진, 〈진영은 불안을 잡지 못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재훈은 “공공저널리즘의 구현”을 박혁진은 “공동체의 서사”를 제안하였다. 양자의 제안에서 공통적인 것은 진영보다 더 큰 것, 즉 ‘공공성’과 ‘공동체’에 대한 추구이다.
이와 유사한 지적은 각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다. 북한연구자인 조성렬교수는 “오랫동안 보수와 진보의 논리를 연구하다 보니 양측 주장이 모두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고백하였다(대담한 대담, 〈핵무장, 핵우산, 핵잠수함 그리고 작전통제권〉). 러시아 연구자인 정재원교수도 “이스라엘이 미국보다 더 잔인한 짓을 하는데도 관심이 훨씬 적은 이유는 우리 안에 진영 중심의 사고가 너무나도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특집, 〈오늘의 전쟁을 말하다〉).
확실히 지금의 한국사회는 ‘무엇이 진정으로 옳은지’를 공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런 말을 하면 어느 한 진영을 대변한다고 공격받기 십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참된 정치라면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줘야 할 텐데 오히려 그 위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대철학에서는 ‘포스트휴먼’ 논의가 활발하다. 90년대에는 ‘포스트모던’ 담론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포스트진영 철학’, ‘탈진영 담론’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이 이번 호에서 얻은 확신이다.
목차
흑표지(날개 안상수의 《사상계》 타이포그라피)
저는 편집인編輯人입니다 저는 편집인偏執人입니다_장백산
대담한 대담
대한민국 안보의 현재와 과제_문장렬, 이정윤, 조성렬 대담
국가안보 및 핵무장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_장백산
특집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쟁의 민낯, 길 잃은 세계_박명림, 김동춘, 권헌익 대담
오늘의 전쟁을 말하다_임영신, 구정은, 정재원 대담
삶의 층위에서 평화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_이희연, 문아영, 오은영 대담
전쟁하는 국가에서 화쟁하는 국가로_도법, 이남곡, 이병철 문답
전쟁은 영원히 멈출 수 없는 것인가!_정주진
파괴의 쳇바퀴, 평화의 길: 합리적 전쟁이라는 착각_황준서
인간의 힘과 하느님의 힘: 시몬 베유와 평화의 신학적 상상력_조민아
관점
양당정치, 어떻게 균열을 낼 것인가?_이재훈
진영은 불안을 잡지 못 한다_박혁진
시사時思
_박혜민
[인터뷰] 대체 팔레스타인을 왜 갔냐고요?_해초, 승준, 동현
나목은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다: 박완서 타계 15주기_이소연
늑구가 네가 잡히지 않았더라면_추현욱
숨비소리
백표지(이철수 화백의 〈무문관〉 판화)
사상계나무
권두언_‘진리’가 아닌 ‘진영’을 묻는 시대_조성환
사상계 옛글 갈무리: 내가 존경하는 인물, 깐디_이정하
연재 : 사상을 잇다
다시 경계에서 말한다(3)
- 응원봉과 돌봄의 연대로 해방을 꿈꾸는_우에노 지즈코
- 제국주의적 기술 포식자에 맞서는 상생의 길_조한혜정
세대 간 마니또(3)
- 내가 영원히 지켜줄 수 없는 누군가에게_장혜영
- 공공의 언어를 함께 빚어나가는 당신에게_박은정
몸과 삶(2) 전쟁은 몸 안에서 시작된다_배서영
S.O.S.(4) 브라질 헤시피에서 만난 저항과 축제의 영성_현경
무문관無門關(4) 무문관_이철수
신동학에세이(4) 미·중 문명충돌과 문명융합의 신동학_구해우
神學에서 信學으로(4) 유목시대 ‘집’에 대해 사유하다_이은선
몽상가들의 낙원(6) 하필 낭만을 선택한 공룡이 고성으로 간 까닭_이정하
문예 : 자연을 짓다
[시] 떡 / 숨쉬는 시_문정희
[시] 촛불지키기/ 아비별을 위한 기도_전수오
[비평] 〈인형의 집〉의 기적을 둘러싸고_심지연
[서평] 우리는 왜 백범을 기억해야 하나?_임순만
[책소개] ‘전쟁과 평화’ 도서 큐레이션_편집부
특별기고
영원한 아이: 그림자와 아니무스 그리고 행함에서 있음으로(1)_유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