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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박재택
•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경운대학교 객원교수 •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관리관)• 행정자치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장(이사관) 역임[저서]『행사와 의전 - 관행과 사례, 그 뒷이야기』, 사철나무, 2002『자원봉사, 여기에 미래가 있다 - 엑스포 그리고 세계의 자원봉사 이야기』, 사철나무, 1995
추천사
머리말
1. 나의 성정은 싱겁지도 짜지도 않았다. 짭조름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때로는 매운맛이 있었다.
2. 나는 배달민족, 단군 동이 조선의 후예이다.
3. 나는 1397년 4월에 조선 국왕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4. 고려 말, 조정과 사회지도층이 부패해서 백성의 삶이 극도로 곤궁하지 않았다면
5. 나는 천재 독서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6. 어깨너머 공부, 그 신묘한 체험을 돌이켜 본다.
7. “공부해라. 공부해라.” 청소년기에는 이만큼 듣기 싫은 말도 없었을 게다.
8. 나는 소년 시절 음과 양의 변화 원리에 곧잘 정신을 빼앗겼었다.
9. 양녕 형님은 놀기 좋아하는 호기탕탕한 성정을 타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10. 임금이 된 다음 바로 산학(算學), 즉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11. 말을 타면서 공을 치는 것을 격구, 사발만 한 구멍에 장대로 나무 또는 마노로 만든 공을 처넣는 놀이를 격방
12. 나의 즉위 초, 조선의 인구는 약 600만 명 내외였다. 그중 10% 정도만이 글을 아는 사람이고
13. “세자 저하, 저는 벼슬보다도 피리를 더 좋아합니다.” 박연(朴堧)은
14.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전쟁사를 편찬하다. 나 이도는 조선이 약소국이란 것,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대국인 명나라에
15. 장영실(蔣英實)과의 만남을 하늘에 감사한다. 재위 6년 되던 해 가을, 행색이 초라한 한 젊은이
16. 조선에서 화약을 처음 만든 최무선(崔茂宣)은 고려 말 사람이다. 그의 아들 최해산은 조선의 보배
17. ‘미치다’라는 말은 보통 ‘정신이 이상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또 다른 의미도 있는데, ‘어떤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거나 비정상적으로 열중하다’라는 뜻도 있다.
18. 특히 화포의 개량과 시험에 관심을 기울였다. 경회루 앞에서도 화포 실험을 하고
19. 대마도란 섬은 본래 우리나라 땅이다. 험하고 궁벽하며 협소한 곳이므로 왜놈들이 모여 사는 것을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20. 화포 전문 부대인 총통위(銃筒衛)를 만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포병사령부이다.
21. 북방을 개척하여 경계를 압록강, 두만강까지 넓혔다. 회고컨대 야인(野人)을 내치기만 했지 끌어안지는 못했다.
22. 1425년 재위 7년이 되던 해 나는 임금과 하위직 관료와의 대화, 윤대(輪對)를 정기적으로
23. 내가 임금을 할 때는 유독 반대하는 신하가 많았다. 나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적으로 알기보다는 뜻을 달리하는 친구로 존중하는 편이었다.
24. 나는 권력으로 강제하지 않았다. 대화와 설득으로 나의 의지를 펼칠 수 있는 임금이 되고 싶었다.
25. 우리 민족이 한때 동아시아의 패권국가였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26. 재위 10년 되던 해 공법(세법) 개정에 착수했다. 나라 곳간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마무리하는 데 16년이나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찬반이 엇갈려 찬반 투표로 백성의 의견을 물어 결정했다.
27. 찬반투표에 부쳤던 새로운 공법(세법)의 내용은
28. 나는 틈나는 대로 의기(儀器, 천체 관측 기구), 천문과 역법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29. 나는 치수 사업을 대대적으로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백성의 농토에 물길을 내주지 못하고
30. 해양 진출에 소홀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31. 즉위 25년 12월 30일 1443년 훈민정음 28자를 완성하고, 예의(例義, 예와 뜻을 적은 것)를 조정에 알렸다.
32.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고심했던 것은
33. 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서문, 한글학자 김슬옹 박사가 번역한 것이다.
34. 한글 창제에 대한 임금과 신하들 간의 토론.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 제작의 부당함을 상소하다. 정음 만든 지 2달 후인 재위 26년 1444년 2월 20일이다.
35. 최만리의 상소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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