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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푸스 3 : 유대 전쟁사
유대·로마 전쟁과 예루살렘 함락에 관한 기록
생명의말씀사 | 부모님 |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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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유대 율법에 정통한 제사장 가문 출신의 바리새인, 그리스 고전에 조예 깊은 문예인, A. 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도한 유대 저항군 지휘관, 로마 황제 3대를 측근에서 섬긴 인물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저작 전집.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역사가,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가이자 작가로서의 삶이 교차하는 기록이다.

『유대 고대사』는 천지 창조부터 바벨론 유수, 그리고 귀환 이후 네로 황제 치하까지의 역사를 성경과 비성경 사료를 전거로 서술한다. 1세기 그리스-로마 문화권 지식인의 비종교적, 역사 서술적 관점에서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며, 예수의 존재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비기독교 문헌 중 하나로 평가된다.

『유대 전쟁사』는 유대-로마 전쟁과 예루살렘 함락을 직접 경험한 기록으로, 지중해 세계의 사회·정치·군사·문화사를 함께 담는다.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은 변절자라는 오명 속에서도 유대 율법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변호하며, 로마 제국 내 유대인의 정당함을 주장한 민족 변론서다.

  출판사 리뷰

유대 율법에 정통한 제사장 가문 출신의 바리새인, 그리스 고전에 조예 깊은 문예인,
A. 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도한 유대 저항군 지휘관,
그러나 로마 황제 3대를 측근에서 섬기며 투항자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했던 기구한 인물,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역사가,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가이자 작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저작 전집

제1권 유대 고대사 THE ANTIQUITIES OF THE JEWS
천지 창조부터 바벨론 유수까지의 기록
_1세기 그리스-로마 문화권 지식인의 비종교적, 역사 서술적 관점에서의 성경 본문 해석과 재구성.
_구약의 본문이 존재하고 통용되었음을 보여주는 2차적 문헌 자료.
_구약성경을 주요 전거로 하여 천지 창조부터 유다 왕국의 최후, 바벨론 포로기 이전까지의 유대인 역사를 헬레니즘적 사고와 논리로 수록.

제2권 유대 고대사 THE ANTIQUITIES OF THE JEWS
바벨론에서의 귀환부터 로마 네로 황제 치하까지의 기록
_성경 외에 예수의 존재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비기독교 문헌 중 하나.
_비성경적 사료를 주요 전거로 하여 고레스왕 칙령에 의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부터 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에 놓이기까지의 유대인의 역사와 유대 사회의 변화 수록.

제3권 유대 전쟁사 THE WARS OF THE JEWS
유대-로마 전쟁과 예루살렘 함락에 관한 기록
_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 참전하여 실시간으로 유대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지켜본 유대 저항군 출신 귀화 로마인의 역사 기록.
_풍부한 고전 문헌들을 전거로 하여 유대와 로마 제국 사이의 역사적 갈등과 종교적 충돌, 유대인의 항전과 최후를 서술한 1세기 지중해 세계의 사회, 정치, 군사, 문화사.

제4권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자서전 THE LIFE OF FLAVIUS JOSEPHUS
아피온 반박문 AGAINST APION
_변절자라는 오명에 대항하여 중재자,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강조함으로 정치적 입지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자전적 기록.
_투항자였으나 끝까지 유대인의 역사와 종교의 우수성, 유대 율법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강조하고 이방인들의 야만성과 부조리를 지적하여 로마 제국 내에서 유대인의 정당함을 변호하려 했던 굴곡 많은 천재의 민족 변론서.

인류 역사상 요세푸스만큼 칭찬과 비난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유대인 동족들에게는 배신자요 변절자로서 지금까지도 지탄을 받고 있는 반면에, 기독교인들에게는 특히 초대 변증가들과 중세 시대에는 동·서방을 막론하고 위대한 저술가로 명성을 날렸다. 요세푸스가 진실만을 추구한 양심적이고도 공정한 탐구자가 아니라 특정한 인상을 주려는 고도의 목적을 가진 저술가였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요세푸스는 대부분의 고대 저술가들이 가진 결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분석은 피상적이며, 그의 연대기는 오류투성이이고, 그의 자료들은 과장되어 있으며, 그의 말은 틀에 끼워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자신의 명예가 달린 부분에서는 의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요세푸스가 탁월한 역사가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요세푸스는 구약과 율법의 근거 위에 서 있었으면서도 당시의 유대교의 좁은 경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고,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하나님의 형벌로 해석한 점에서 기독교 저술가들과 공통점이 있는 인물이었다. 요세푸스는 유대주의와 헬레니즘, 양쪽의 전통을 통합하였으며 로마의 세속 세계와 성경의 종교적 유산을 연결시켰을 뿐 아니라 로마 제국 치하에 놓인 여러 민족의 멘탈리티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예수님 탄생 이전 시대부터 기독교가 태동한 1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팔레스타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일한 역사서라는 점에서 요세푸스가 차지하는 위치란 거의 절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번역자 김지찬 교수의 서문 중에서

고대 고전 작품의 유물로서 가치 있을 뿐 아니라 고대 학문의 불멸의 기념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요세푸스의 저작들은 역사적인 것과 논쟁적인 것으로 양분해서 분류할 수 있다. 전자에는 ��유대 고대사��와 ��유대 전쟁사��가 포함되고 후자에는 ��아피온 반박문��과 몇몇 소론(小論)이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A. D. 70년에 일어났던 예루살렘 함락 후의 이야기를 그 당시의 믿을 만한 증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대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은 그 전 시대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결국 요세푸스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요세푸스 당시의 유대 민족의 성격뿐 아니라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든 세력과 관련 있는 시대의 유대 민족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요세푸스의 작품들은 단지 사실들에 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서만 읽히지 않는다. 이 책들은 기독교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들을 연구하는 길을 터줄 것이며 하나님의 옛 백성들을 부패하게 하고 타락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기사(記事)가 쓰였던 시대의 지배적 정조가 무엇인지를 알 때 불투명했던 점이 명확해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해 본 사람들은 전통적 증거, 전통적 해석, 국민의 기억이라는 창고에서 나온 새로운 사실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문학 편집자 헨리 스테빙 박사의 서론 중에서

§ ��유대 전쟁사: 유대-로마 전쟁과 예루살렘 함락에 관한 기록�� 서문 중에서
1. 유대와 로마와의 전쟁은 금세기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유사(有史) 이래로 최대(最大)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도시와 도시 간의 전쟁일 뿐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 전쟁과는 하등의 관련도 없는 자들이 단지 풍문으로만 얻어듣고 서로 상치되는 허망한 이야기들을 역사랍시고 교묘하게 얽어 놓은 한편 전쟁에 참여했던 자들은 로마에 아첨하기 위해서 아니면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사실을 날조하여 거짓 역사를 기술하는 등의 잘못을 범하였다. 이들의 역사 기록은 중상모략과 지나친 칭찬으로 가득 차 있다. 어디서도 진실한 사실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모국어로 전쟁사를 기록하여 상부 야만인(Upper Barbarians)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고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해 이 전쟁사를 헬라어로 옮기려고 한다. 나 마티아스(Matthias)의 아들 요셉(Joseph, 훗날 로마로 귀화하면서 요세푸스[Josephus]라는 로마식 이름을 갖게 됨-편집자 주)은 유대인으로서 제사장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로마에 대항하여 직접 싸우기도 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늘의 내가 되기에 이르렀고 이렇게 본서를 기술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유대와 로마와의 전쟁이 발발할 당시 로마 제국은 실상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변혁을 꾀하려고 마음먹은 유대인들도 이렇게 로마가 혼란한 틈을 타서 봉기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당시 경제적인 여건이 좋았으며 많은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이에 동방의 정세는 심상치 않았다. 유브라데(Euphrates, 유프라테스)강 건너 동방의 유대인들도 일부는 혼란을 틈타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반면 나머지는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여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이 동방의 모든 유대인도 합세하여 로마에 대항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로마 제국 인근 지역의 갈리아인(Gauls)들도 동요하고 있었으며 켈트인(Celtae)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혼란은 모두가 네로(Nero) 황제가 사망한 후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중략]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 전쟁이 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이 진실을 모르면서 날조와 아첨으로 가득 찬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중략]
3. 물론 유대와 로마의 전쟁사를 쓴 작가들이 자기들의 기록을 역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 그들 나름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도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대국은 약화시키고 과소평가하려고 하면서 로마 제국의 위대성을 입증해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국을 과소평가하면 할수록 무력한 유대국을 정복한 로마도 그만큼 위대하게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고의로 은폐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다. 또한 그들은 이 전쟁을 통해 로마군 병사들과 지휘관들이 큰 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들이 예루살렘(Jerusalem)을 함락시킨 것이 별것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위대성과 노고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4. 그러나 나는 로마인을 찬양한 역사가들에게 대항한다고 해서 그들이 취한 극단과 정반대되는 극단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즉 나의 동족의 행동을 무조건 칭찬하고 과대평가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나는 양자의 행동을 공평하고 정확하게 기술하려고 애쓸 작정이다. 이제 유대 전쟁사를 서술하려고 하니 나의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중략] 유대국이 멸망한 것은 유대인의 저항하는 기질에도 그 원인이 있으나 유대인 강도들(tyrants 혹은 robbers, 로마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선동한 과격한 무리들을 가리킴-역자 주)의 횡포에도 큰 원인이 있다. 강도들의 횡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로마군이 유대를 공격하고 마지못해 우리의 거룩한 성전을 불살랐으니 이 어찌 애통한 일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티투스 카이사르(Titus Caesar)께서 직접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이다. 티투스 카이사르께서는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역자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의 함락을 연기하셨다. 반역의 주모자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어 예루살렘의 파괴만큼은 막으려고 한 것이었다. [중략] 한번 생각해 보라.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그 어떤 도시보다 행복을 누려 오던 우리의 예루살렘이 또다시 완전한 폐허로 변해 버렸으니 어찌 비통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유대인만큼 많은 비극과 불행을 경험한 민족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외국인들에 의해 그런 불행을 당하게 되었으니 어찌 내가 비통한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중략]
5.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리스의 식자(識者)들이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들은 금세기에 과거의 전쟁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큰 전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고대의 역사가들의 노고를 극심하게 비판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데 있어서는 고대의 역사가들을 능가할는지 모르나 역사 기술의 의도나 목적에 있어서는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중략] 고대의 역사가들은 그 당대에 일어난 사건을 역사로 남기는 일에 전심전력하였다. 그 역사를 읽는 독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으므로 역사가는 함부로 거짓을 서술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전에 결코 기록된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을 역사로 남기는 것, 그 당대의 사건을 기록으로 후대에 물려주려고 애쓰는 것만큼 칭찬과 찬사를 받은 것이 없었다. 남의 작품을 순서를 바꾸거나 경향을 약간 바꾸는 데만 골똘해 있는 역사가가 아니라 전에 기록된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서 기록하고 자기 자신의 독특한 역사를 기술하는 일에 전념하는 역사가가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그 그리스 역사가들에게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이 일에 전념해 왔고, 그리하여 이 시대의 큰 사건이었던 유대와 로마의 전쟁을 기억하는 기념물로 이 저서를 헬라인들과 야만인들에게 헌정(獻呈)하게 된 것이다. 우리 동족 유대인 유력 인사들은 역사를 쓰라고 하면 첫째, 진실을 말해야 하고 둘째, 자료 수집에 많은 수고가 뒤따른다는 이유로 입을 딱 벌리고 뒤로 넘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고는 역사를 기술하는 일을 역사의 재료가 되는 왕들이나 세력가들의 행동을 잘 모르는 하층 계급의 사람들에게로 미룬다. 그러나 그리스의 역사가들이 역사의 진실을 무시하는 데 반해 유대인들은 역사의 진실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6. [중략] 나는 나의 선배인 고대 역사가들과 선지자들이 역사 기술을 끝마친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의 역사를 기술해 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밝혀 둘 것이 있다. 내 당대에 일어났던 전쟁에 관해서는 나의 능력이 닿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상세히 살펴볼 작정이나 그 이전의 역사는 대충 훑어보도록 하겠다.
7. 나는 먼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3년 3개월간 예루살렘을 장악하였다가 아스모네우스(Asamoneus)의 후손들에게 쫓겨 나가는 경위부터 살펴볼 계획이다. 그 후 아스모네우스의 후손들이 정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다가 로마인들과 폼페이우스(Pompey)의 침략을 당하게 된 경위와 안티파테르(Antipater)의 아들 헤롯(Herod)이 아스모네우스의 후손들을 몰아내고 소시우스(Sosius)를 그 일에 끌어들인 경위를 살펴본 다음,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로마의 황제로 로마를 다스리고 있었고 퀸틸리우스 바루스(Quintilius Varus)가 유대 땅에 있었을 때 유대인들이 헤롯의 사망을 기화로 반란을 일으킨 경위를 알아볼 계획이다. 그 후에는 케스티우스(Cestius)에게 일어난 사건과 함께 네로(Nero)의 재위 제12년에 어떻게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으며 전쟁 초기에 유대인이 어느 곳을 공격했는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8. 그 후에 유대인이 여러 도시의 성벽을 구축하는 모습과 네로가 케스티우스의 패배로 전쟁의 추이를 걱정한 나머지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를 군대 사령관으로 파견하게 된 경위와 이 베스파시아누스가 장남을 거느리고 유대를 침공한 경위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때 베스파시아누스가 끌고 온 로마군의 병력은 얼마나 되며 그의 원군이 갈릴리(Galilee)에서 얼마나 죽었는지 살펴보고, 갈릴리의 전 도시들을 무력과 조약과 타협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장악하는 모습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본 다음에는 전쟁터에서의 로마군의 질서 정연함과 군기에 관해서 다루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갈릴리와 유대의 크기와 경계와 형세(形勢)에 관해서 언급하고 갈릴리의 특색과 호수들과 샘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같이 연구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갈릴리의 각 도시가 정복되는 과정에서 어떤 불행을 겪었는지를 상세히 다룰 계획인데 내가 그것을 실제 눈으로 보고 직접 그 불행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역사를 알리는 사명을 맡은 이상 나 자신이 겪은 불행도 스스럼없이 조금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밝힐 것이다.
9. 그다음에는 네로 황제가 사망하고 유대의 형국이 극도로 악화되는 과정과 함께 베스파시아누스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다가 황제가 되어 돌아가는 과정을 살피게 될 것이다. 이때 그가 황제가 될 것을 미리 알리는 전조가 있었다는 점은 물론 로마에서의 급변하는 정세 변화와 병사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가 황제에 오르는 모습을 상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또한 베스파시아누스가 제국의 통치를 맡기 위해 애굽으로 떠나자 유대국이 더 거세게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으나 강도들이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유대국 내에 내분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살펴보게 될 것이다.
10. 여기까지 살펴본 다음에는 티투스(Titus)가 애굽에서 나와 두 번째로 유대를 공격하는 장면을 다루고 티투스가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하였는지도 살펴보는 것은 물론, 티투스의 두 번째 공격으로 유대의 예루살렘이 어떤 지경에 처하게 되었는가도 함께 살펴보게 될 것이다. 티투스가 토성을 쌓고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된 자세한 상황과 함께 예루살렘의 삼중 성벽의 크기와 성전의 구조와 제단의 크기와 성전 각 건물의 치수 등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유대의 명절과 일곱 가지 정결 예식 혹은 정결의 날,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의복, 제사장들의 거룩한 직무, 성전의 지성소의 성격 등을 조금도 숨김없이 사실 그대로 살펴볼 계획이다.
11. 그 후에는 로마 병사들은 동족이 아닌 외국인의 목숨을 살려 주려고 하는 데 반해 강도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대하는 모습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또한 티투스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보존하고 싶은 열망에서 반역을 일으킨 자들에게 협상을 제의하게 된 경위를 다루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유대인들의 고통과 불행을 살펴볼 것이다. 그들이 로마에 대한 반란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가를 상세히 살펴볼 것이며 게다가 기근까지 겹쳐 온갖 고통을 다 겪다가 마침내 함락되고 마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것이다. 그 후에는 탈주자들의 불행과 포로들의 처형을 다루게 될 것이며 카이사르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성전이 방화된 경위와 불꽃 가운데서 성전 안에 보관된 많은 성물(聖物)들을 끄집어낸 경위 등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 있었던 표적과 기사는 물론 예루살렘의 함락 과정도 상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강도들이 생포되고 많은 유대인이 포로가 되어 각기 운명에 따라 주어진 길을 가게 된 사실들도 빼놓지 않을 것이다. 그 후에 로마 병사들이 남은 예루살렘 성벽과 유대의 각 요새를 훼파한 경위와 티투스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반란을 완전히 진압한 후 승리의 기쁨을 안고 이탈리아(Italy)로 돌아간 경위도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후략]


  작가 소개

지은이 :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요세푸스는 유대의 제사장 가문 엘리트 귀족 출신으로 1세기 제정 로마 시대에 유력한 정치가이자 군대 사령관으로, 뛰어난 학자이자 역사가로 활약한 인물이다.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유대의 주도 예루살렘에서 제사장 가계의 아버지와 아스모네우스 왕가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요세프 벤 마티탸후라는 히브리식 이름이 있었지만 훗날 로마 시민으로 거듭나면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플라비우스는 그의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된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가문명에 따른 것이다.그는 A. D. 66년에 발발한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갈릴리에 군사 총독으로 파견되어 저항군 부대를 훈련시키고 여러 도시와 마을을 요새화하는 등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부자가 지휘하는 로마 제국 군대를 상대하기에는 중과부적이었고 결국 격퇴당하기를 반복하다가 요타파타 포위전에서 결정적으로 패하고 만다. 포위 공격에서 살아남은 다른 유대인 지휘관들이 항복하기를 거절하고 자결을 택한 반면 요세푸스는 여러 공교로운 이유로 로마군에 투항하는 길을 선택하였고 베스파시아누스 앞에 서서 그가 훗날 로마의 황제가 될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함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실제로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 황제에 즉위한 후 그의 아들 티투스의 막료로 중용되었고 A. D. 70년 예루살렘 포위전 때는 로마를 대표해 유대군과의 협상에도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는 저항군이었으나 정복군의 일원으로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불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도하게 된 것이었다.이후 정식으로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옛 저택에 머무는 특혜까지 누리며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권위 있는 작품들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죽을 때까지 로마인으로서 로마에 거주하면서 플라비우스 왕조 3대를 섬기는 특권층으로 살아가기는 했으나 자신의 혈통과 굴곡 많은 인생사로 인해 요세푸스는 유대인을 향해서는 배신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평생토록 자기변명을 해야 했고 로마인을 향해서는 자존성을 위해 자신의 조상과 종교의 우수성을 변론하는 일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끝자락에 같은 유대 땅에 실존했던 인물, 예언대로 멸망한 조국의 참극을 정복군으로서 지켜본 인물, 그리스 로마 문화에 경도된 학자이지만 히브리 역사의 위대함과 유대 율법과 문화의 탁월성을 강조하기를 멈출 수 없었던 인물, 그러한 모순적 족적으로 인해 그가 남긴 저작들은 전대미문의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그리하여 고대 학문의 불멸의 기념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게 되었다.

  목차

THE WARS OF THE JEWS
유대 전쟁사
유대-로마 전쟁과 예루살렘 함락에 관한 기록

서문

제1권 167년간의 역사 기록: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을 장악한 때부터 헤롯 대왕의 죽음까지
제1장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예루살렘시가 정복되고 성전이 약탈당하게 된 경위, 그리고 마카비 가문의 마티아스와 유다스의 행적에 관해서와 유다스의 죽음에 관해서
제2장 유다스의 계승자인 요나단과 시몬과 요한 히르카누스에 관하여
제3장 아리스토불루스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왕이 된 후 모친과 동생을 처형하였으나 왕위에 앉은 지 1년도 채 못 되어 바로 죽게 된 경위
제4장 유대를 27년 동안 다스린 알렉산드로스 얀네우스의 업적에 관하여
제5장 알렉산드라가 9년간 유대를 다스리게 된 경위, 그리고 이 기간에 바리새파가 유대국의 실제적인 지배자로 부상하게 된 경위
제6장 알렉산드로스의 상속자인 히르카누스가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자 아리스토불루스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경위, 그 후 히르카누스가 안티파테르의 계략과 아레타스의 도움으로 왕위를 되찾으려고 애를 썼으나 실패하고 결국은 폼페이우스의 중재를 통해 두 형제가 화해하고 타협을 보게 된 경위
제7장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은 쉽게 투항시킬 수 있었으나 성전은 무력으로 장악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 그리고 폼페이우스가 지성소까지 들어가게 된 연유와 유대에서 행한 그 밖의 다른 행동들에 관하여
제8장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폼페이우스에게서 도망친 후 히르카누스를 징벌하는 원정길에 나섰으나 가비니우스에게 패하여 요새들을 가비니우스에게 넘겨주게 된 경위, 그 후 아리스토불루스가 로마를 탈출하여 군대를 일으켰으나 로마군에 패배하여 다시 로마로 끌려가게 된 경위, 그리고 가비니우스, 크라수스, 카시우스 등에 관련된 이야기
제9장 아리스토불루스가 폼페이우스의 추종자들에게 암살당하고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스키피오에 의해 처형된 경위, 그리고 폼페이우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안티파테르가 카이사르와 교분을 쌓아 가는 경위와 미트리다테스를 도와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된 경위
제10장 카이사르가 안티파테르를 유대의 행정 장관으로 임명하자 안티파테르가 다시 파사엘루스를 예루살렘의 통치자로, 헤롯을 갈릴리의 통치자로 임명한 경위, 그로부터 얼마 후 헤롯이 산헤드린 앞에 출두하여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무죄 방면된 경위, 그리고 섹스투스 카이사르가 바수스의 반역 음모에 걸려 살해되자 그 뒤를 마르쿠스가 계승하게 된 경위
제11장 헤롯이 온 수리아의 행정 장관으로 임명되자 말리쿠스가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안티파테르를 독살하게 된 경위, 이에 군단 지휘관들이 말리쿠스를 처형하기로 결의하게 된 경위
제12장 파사엘루스가 펠릭스를 제압하고 헤롯 또한 안티고누스를 격퇴할 수 있었던 경위, 그리고 유대인들이 헤롯과 파사엘루스를 한꺼번에 고소하였으나 안토니우스가 그들을 무죄로 인정하고 분봉왕으로 임명한 경위
제13장 바대인들이 안티고누스를 유대로 복귀시키고 히르카누스와 파사엘루스를 감옥에 수감한 경위, 그리고 헤롯의 탈출과 예루살렘의 함락과 히르카누스와 파사엘루스가 당한 고생에 관하여
제14장 헤롯이 아라비아에서 쫓겨난 다음 서둘러 로마로 가게 된 경위,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그를 유대의 왕으로 세우게 된 경위
제15장 안티고누스가 마사다 요새를 공격하였으나 헤롯이 로마로부터 돌아와서 마사다 요새를 구해 내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진격한 경위, 그리고 실로가 뇌물로 매수되었음을 알게 된 경위
제16장 헤롯이 세포리스를 함락시키고 동굴에 거주하는 강도들을 소탕하는 한편 마케라스를 원수로 간주하고 보복한 다음 사모사타를 포위 공격하고 있는 안토니우스를 도우러 간 경위
제17장 헤롯의 동생 요셉이 헤롯의 꿈에 나타난 대로 살해된 경위와 헤롯이 두 번씩이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경위, 그 후 헤롯이 동생을 살해한 파푸스의 목을 베고 그 머리를 막냇동생 페로라스에게 보낸 다음 얼마 안 있어 예루살렘을 공략하고 마리암네와 결혼하게 된 경위
제18장 헤롯과 소시우스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경위와 안티고누스의 죽음과 클레오파트라의 탐욕에 관하여
제19장 클레오파트라의 요청에 견디다 못한 안토니우스가 헤롯을 아라비아인들과의 전쟁에 내보내자 헤롯이 여러 번의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두게 된 경위와 큰 지진이 일어난 사건에 관하여
제20장 헤롯이 카이사르에게서 왕위를 인정받은 후 많은 선물로 카이사르와의 우의를 다지자 카이사르가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클레오파트라가 그전에 빼앗았던 헤롯의 영토의 일부는 물론 제노도루스의 영토까지도 하사하게 된 경위
제21장 헤롯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서 성전과 도시들을 건축한 경위, 그리고 헤롯이 건축한 그 밖의 건축물들과 외국인들에게 보인 아량에 관하여,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만사가 다 헤롯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 경위
제22장 대제사장들인 아리스토불루스와 히르카누스 및 왕후 마리암네가 살해당하게 된 경위
제23장 마리암네의 아들들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안티파테르가 총애를 받게 된 경위, 그리고 마리암네의 아들들이 카이사르 앞에 고소되었으나 부친인 헤롯과 화해하게 된 경위
제24장 안티파테르와 도리스의 적대감에 관해서, 알렉산드로스가 글라피라의 일로 안절부절못하게 된 경위, 그리고 헤롯이 의심을 품고 있던 페로라스와 여러모로 해를 끼친 살로메를 용서해 주게 된 경위, 헤롯의 내시들이 고문을 당하고 알렉산드로스가 결박당하게 된 경위
제25장 아르켈라우스가 알렉산드로스와 페로라스와 헤롯의 사이를 화해시키게 된 경위
제26장 에우리클레스가 마리암네의 아들들을 중상모략한 경위와 에우아라투스의 변명이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경위
제27장 카이사르의 지시에 따라 헤롯이 베리투스에서 두 아들을 고소하여 그들을 법정에 세우지도 않고 유죄 판결을 내리고 얼마 후 세바스테로 보내어 교살형에 처하게 한 경위
제28장 안티파테르가 모든 사람의 미움을 받게 된 경위, 그리고 헤롯왕이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들을 자기 친척과 결혼시키려고 하자 안티파테르가 헤롯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어 다른 여인들을 아내로 주게 한 경위, 그리고 헤롯의 결혼과 그의 자식들에 관하여
제29장 안티파테르가 백성들의 미움에 견디지 못하게 된 경위와 헤롯의 전갈을 휴대하고 로마에 가게 된 경위, 그리고 페로라스가 아내와의 결별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헤롯을 떠나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의 영지에서 최후를 맞게 된 경위
제30장 헤롯이 페로라스의 사인을 규명하다가 안티파테르가 헤롯 자신을 독살하려고 독약을 준비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경위, 그 후 헤롯이 도리스와 공범들을 대제사장의 딸 마리암네와 함께 왕궁에서 내어 쫓고 마리암네의 아들 헤롯을 유언장에서 제해 버리게 된 경위
제31장 바틸루스가 모든 사실을 폭로했다는 점을 모르고 안티파테르가 로마에서 귀국한 경위, 이에 헤롯이 그를 재판받게 한 경위
제32장 안티파테르가 바루스 앞에 고소된 후 명백한 증거로 인해 부친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위와 헤롯이 안티파테르의 처형을 자신의 병이 회복될 때까지 연기한 경위, 그리고 그사이에 유언을 변경한 경위
제33장 금독수리상이 산산조각 나게 된 경위, 그리고 헤롯이 임종 직전에 온갖 야만적인 행동을 한 것과 자살을 기도하게 된 경위, 그 후 안티파테르를 처형하도록 명령하고 안티파테르보다 5일을 더 산 후 세상을 떠나게 된 경위

제2권 69년간의 역사 기록: 헤롯의 죽음부터 네로의 명으로 베스파시아누스가 유대국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될 때까지
제1장 아켈라오가 부친 헤롯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백성들을 푸짐하게 대접한 경위, 그러나 그 후 백성들이 대규모의 소란을 일으키자 병사들을 보내 공격하게 하여 무려 3,000명이나 살해하도록 만든 경위
제2장 아켈라오가 대규모의 친척을 이끌고 로마를 방문하였으나 카이사르 앞에서 안티파테르의 고소를 당하게 된 경위, 그러나 니콜라우스가 아켈라오를 위해 변호를 해줌으로써 안티파테르를 누르고 승소할 수 있었던 경위
제3장 유대인이 사비누스의 병사들과 대접전을 벌여 예루살렘이 크게 파괴된 경위
제4장 헤롯의 퇴역 병사들이 소란을 일으키게 된 경위, 그리고 유다스가 강도 짓을 일삼은 경위와 시몬과 아트롱게우스가 스스로 왕위에 오른 경위
제5장 바루스가 유대의 모든 소란을 진압하고 소란을 일으킨 자 2,000명을 십자가형으로 다스리게 된 경위
제6장 유대인들이 아켈라오에 대해 큰 불만을 표시하고 직접 로마 총독의 통치를 받고 싶다고 간청하였으나 카이사르가 그들의 말을 다 들은 후에 헤롯의 왕국을 자기 뜻대로 헤롯의 후손들에게 분배하게 된 경위
제7장 거짓 알렉산드로스에 관하여, 그리고 아켈라오와 글라피라가 각기 그들이 당할 일을 꿈꾼 후에 그 꿈대로 아켈라오는 추방을 당하고 글라피라는 세상을 떠나게 된 경위
제8장 아켈라오의 분봉국이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경위와 갈릴리의 유다의 반란과 유대의 세 종파에 관하여
제9장 살로메의 죽음과 헤롯과 빌립이 건설한 도시들에 관하여, 그리고 빌라도가 소란을 야기시킨 경위와 티베리우스가 아그립바를 감금하였으나 카이우스가 그를 석방시키고 왕으로 임명한 경위와 헤롯 안티파스가 추방당하게 된 경위
제10장 카이우스가 자신의 동상을 성전 안에 세우도록 명령한 경위와 이 명령을 받고 페트로니우스가 행한 행동에 관하여
제11장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통치와 아그립바의 치적에 관하여, 그리고 아그립바와 헤롯의 죽음과 그들이 남긴 후손에 관하여
제12장 쿠마누스 치하에서 많은 소란이 일어났으나 콰드라투스에 의해 소란이 진압된 경위, 그리고 벨릭스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경위와 아그립바가 칼키스의 왕에서 더 큰 왕국의 왕으로 승격된 경위
제13장 네로 황제가 아그립바의 왕국에 네 개의 도시를 병합시키는 한편 나머지 유대 지역은 벨릭스 총독의 관할을 받게 만든 경위, 그리고 시카리들과 술객들과 애굽인 거짓 예언자로 인해 소요가 일어나게 된 경위, 그리고 유대인들과 수리아인들이 가이사랴에서 분쟁을 벌인 경위
제14장 벨릭스의 뒤를 이어 베스도, 알비누스, 플로루스가 차례로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 경위, 그리고 플로루스의 잔인성으로 인해 유대국이 결국은 전쟁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경위
제15장 버니게가 유대인을 용서해 주라고 플로루스에게 간청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경위, 그리고 일단 반란의 불길이 진압되는 듯하다가 플로루스에 의해 다시 불길이 번지게 된 경위
제16장 케스티우스가 유대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군단 지휘관인 네오폴리타누스를 파견한 경위, 그리고 아그립바가 로마와 전쟁을 벌일 의사를 가진 유대 백성들을 만류하기 위해 모아 놓고 연설을 하게 된 경위
제17장 유대와 로마와의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경위와 마나헴에 관하여
제18장 유대인들이 당한 재난과 학살에 관하여
제19장 케스티우스가 유대인들을 괴롭힌 경위, 또한 그가 예루살렘을 공략하다 말고 도저히 납득이 안 갈 정도로 정당한 이유 없이 공략을 중지하고 퇴각하게 된 경위, 그리고 퇴각하다가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시련을 당하게 된 경위
제20장 케스티우스가 네로 황제에게 사신을 보낸 경위와 다메섹의 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유대인 주민들을 학살한 경위, 그리고 예루살렘 주민들이 케스티우스를 추격하기를 중지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로마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수비에 만전을 기하면서 다수의 군대 장관을 임명한 경위, 특히 본서의 저자인 요세푸스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한 경위와 요세푸스가 행한 치적에 관하여
제21장 기스칼라의 요한에 관해서, 그리고 요세푸스가 그를 해치려는 요한의 음모를 능수능란하게 잘 피한 후에 그에게 반역을 꾀했던 일부 도시를 되돌아오게 한 경위
제22장 모든 유대인이 전쟁 준비에 들어간 경위와 기오라스의 아들 시몬이 약탈을 일삼은 경위

제3권 약 1년간의 역사 기록: 베스파시아누스가 유대국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후로부터 가말라가 함락되기까지
제1장 유대인을 진압하라는 네로 황제의 명을 받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수리아로 들어오게 된 경위
제2장 아스글론에서 유대인이 대참패를 당하게 된 경위와 베스파시아누스가 프톨레마이스로 오게 된 경위
제3장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의 지형 묘사
제4장 요세푸스가 세포리스를 공격했으나 격퇴당한 경위, 그리고 티투스가 대군을 거느리고 프톨레마이스에 당도하게 된 경위
제5장 로마군 병사들의 모습과 로마군 진영의 이모저모, 그리고 로마군이 칭찬받아야 마땅할 점에 관하여
제6장 플라키두스가 요타파타를 함락시키려고 공성하였으나 패배하고 만 경위와 베스파시아누스가 갈릴리로 진격해 들어오게 된 경위
제7장 베스파시아누스가 가다라를 함락시킨 후 요타파타로 진격한 경위, 그리고 결국 요타파타가 오랜 기간의 항쟁에도 불구하고 한 변절자의 배신으로 베스파시아누스의 수중에 넘어간 경위
제8장 한 여인으로 인해 은신처가 들통난 요세푸스가 로마군에 투항하기로 결심하게 된 경위, 이때 부하들이 만류하자 요세푸스가 이들과 나눈 대화, 그리고 그 후 베스파시아누스 앞에 끌려 나온 요세푸스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한 말과 베스파시아누스가 요세푸스를 이용한 경위
제9장 욥바가 적의 수중에 넘어가고 디베랴가 함락된 경위
제10장 타리케아이가 함락된 경위와 요단강과 게네사렛 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관하여

제4권 1년간의 역사 기록: 가말라 함락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위해 티투스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한 때까지
제1장 가말라가 포위되고 함락된 경위
제2장 소도시인 기스칼라가 로마군에게 항복하고 요한이 기스칼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도망치게 된 경위
제3장 기스칼라의 요한과 열심당과 대제사장 아나누스에 관하여, 그리고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서로 내분을 일으키게 된 경위
제4장 열심당의 요청을 받은 이두매인들이 즉시 예루살렘으로 달려왔으나 시내로 들어오지 못하고 밤새도록 성 밖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경위, 그리고 대제사장 중 하나인 예수가 이두매인들에게 행한 연설과 이에 대해 이두매인 시몬이 응답한 답변에 관하여
제5장 이두매인들이 폭풍이 부는 밤을 이용하여 성전 안으로 진입한 후에 보인 잔혹한 행위와 열심당의 잔인성에 관하여, 그리고 이두매인들이 아나누스와 예수와 자카리아스를 살해하고 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경위
제6장 열심당이 이두매인들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더 많은 예루살렘 주민들을 학살한 경위,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유대인을 공격하기를 원하는 병사들을 제지하고 당분간 공격하지 못하도록 지시한 경위
제7장 요한이 백성들에게 폭정을 한 경위와 열심당들이 마사다에서 행한 만행에 관하여,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가 가다라를 함락시키게 된 경위와 플라키두스가 보인 행동에 관하여
제8장 갈리아에 소동이 일어났다는 정보를 들은 베스파시아누스가 유대 전쟁을 서둘러서 끝내고자 한 경위, 그리고 여리고와 대평지와 아스팔티테스의 지형적 특성
제9장 베스파시아누스가 가다라를 함락시킨 다음 예루살렘을 공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가 네로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생각을 바꾸게 된 경위와 거라사의 시몬에 관하여
제10장 유대와 애굽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선포한 경위와 베스파시아누스가 요세푸스를 결박에서 풀어 주게 된 경위
제11장 비텔리우스가 전투에 패배하고 살해되자마자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서둘러 길을 재촉한 반면에 그의 아들 티투스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게 된 경위

제5권 약 6개월간의 역사 기록: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위해 티투스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한 때부터
유대인이 최악의 궁지에 몰리게 된 때까지
제1장 예루살렘에 큰 내분이 일어나게 된 경위와 그로 인해 예루살렘이 극도의 재난을 당하게 된 경위
제2장 티투스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한 경위와 예루살렘을 정찰하다가 위험에 빠지게 된 경위, 그리고 그가 진을 친 장소에 관하여
제3장 예루살렘에 다시 내분이 일어나게 된 경위, 그리고 유대인이 내분을 겪으면서도 로마군을 쓰러뜨리기 위해 함정을 판 경위, 그리고 티투스가 부하 병사들을 경솔하다는 이유로 크게 책망한 경위
제4장 예루살렘시의 면모에 관하여
제5장 성전의 면모에 관하여
제6장 폭군 시몬과 요한에 관하여, 그리고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을 돌 때 니카노르가 창에 맞아 부상을 당하게 되자 화가 치민 티투스가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에 한층 더 열을 내게 된 경위
제7장 로마인들이 세운 망대 하나가 저절로 무너지게 된 경위, 그리고 로마군이 수많은 희생을 당한 후에 첫 번째 성벽을 수중에 넣은 다음 다시 두 번째 성벽을 공격하게 된 경위, 그리고 로마인 롱기누스와 유대인 카스토르에 관하여
제8장 로마군이 두 번째 성벽을 두 번 장악하게 된 경위와 두 번째 성벽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 세 번째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된 경위
제9장 한동안 포위 공격을 중단하여도 유대인들이 조금도 반역의 기미를 누그러뜨리지 않자 티투스가 다시 맹공격을 개시하게 된 경위,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티투스가 다시 요세푸스를 보내 동족 유대인에게 화해를 제의하게 한 경위
제10장 수많은 유대인이 로마군에게로 넘어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된 경위와 뒤에 남은 자들이 기근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경위와 그 결말에 관하여
제11장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십자가형을 당하게 된 경위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관하여, 그리고 유대인들이 로마군이 세운 토성을 헐어 버린 경위
제12장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토성으로 완전히 에워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경위와 그 후 기근으로 인해 예루살렘 온 가정과 온 식구들이 쓰러지게 된 경위
제13장 예루살렘 안에 대살육과 신성 모독이 있게 된 경위

제6권 약 한 달간의 역사 기록: 유대인이 최악의 궁지에 몰리게 된 때부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까지
제1장 유대인에게 계속 재난이 몰아닥치게 된 경위와 로마군이 안토니아 망대를 공격하게 된 경위
제2장 티투스가 안토니아 망대를 파괴하라고 지시한 다음 요세푸스를 시켜 다시 한번 유대인에게 투항할 것을 촉구한 경위
제3장 유대인들이 많은 로마 병사를 불살라 죽이기 위해 계략을 꾸민 경위와 예루살렘이 당한 무서운 기근
제4장 토성이 완공된 후 공성추를 배치하여 공격을 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하자 티투스가 성전의 문들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한 경위,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티투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병사들에 의해 성전 본당이 전소된 경위
제5장 성전에 불이 붙기 시작한 후 유대인들이 극도의 고통을 당하게 된 경위와 성전의 멸망 전에 나타난 표적들과 한 거짓 선지자에 관하여
제6장 로마군이 그들의 군기를 앞세우고 성전에까지 들어와서 티투스에게 기쁨의 환호성을 올리게 된 경위, 그리고 유대인들이 은혜를 베풀 것을 간청하자 티투스가 그들에게 연설한 것과 또한 티투스의 이 연설에 대해 유대인들이 행한 답변이 결국 티투스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경위
제7장 강도들이 온갖 악을 자행한 끝에 결국은 많은 불행을 겪게 된 경위와 티투스가 하부 도시를 장악하게 된 경위
제8장 티투스가 시온산 즉 상부 도시 둘레에 토성을 쌓게 된 경위, 그리고 토성이 완공되자 공성 장비들을 운반하여 배치한 후 성을 공격하여 전 예루살렘을 장악하게 된 경위
제9장 티투스가 상부 도시로 들어온 후 내린 명령과 예루살렘 공성 기간의 포로 수와 사망자 수에 관하여, 그리고 폭군들인 시몬과 요한을 비롯해서 지하 동굴로 피신한 강도들의 최후에 관하여
제10장 예루살렘이 전에도 다섯 번이나 함락된 적이 있었으나 완전히 파괴되기는 이번이 두 번째인 것에 관하여, 그리고 예루살렘의 간략한 역사

제7권 3년간의 역사 기록: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때로부터 구레네의 유대인들이 반역을 일으킨 때까지
제1장 세 개의 망대들을 제외하고 전 예루살렘이 파괴된 경위, 그리고 티투스가 병사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부하들을 극구 칭찬하고 그들에게 상을 베푼 후에 많은 병사를 해산시킨 경위
제2장 티투스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온갖 쇼를 공연한 경위, 그리고 폭군 시몬이 체포되어 승리의 기념물로 남게 된 경위
제3장 티투스가 부친과 형제 도미티아누스의 생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많은 유대인을 살해한 경위, 그리고 안티오쿠스라는 한 유대인의 범죄와 불경 때문에 안디옥의 전 유대인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된 경위
제4장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에서 대환영을 받은 경위, 그리고 게르만인들이 로마 제국에 반역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한 경위, 그리고 사르마티아인들이 무시아를 휩쓸다가 격퇴를 당해 다시 원래 지역으로 쫓겨 오게 된 경위
제5장 티투스가 수리아를 가로질러 여행하다가 직접 본 안식일강에 관하여, 그리고 안디옥 주민들이 티투스에게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고소를 하였으나 티투스가 거절한 경위와 티투스와 베스파시아누스가 거둔 승리에 관하여
제6장 마케루스라고 부르는 도시에 관하여, 그리고 루킬리우스 바수스가 마케루스 성채 및 그 밖의 지역들을 장악하게 된 경위
제7장 콤마게네의 왕 안티오쿠스가 겪은 불행에 관하여, 그리고 알란인에 관해서와 알란인이 메대인과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큰 불행을 겪게 된 경위
제8장 마사다 요새와 이를 장악하고 있었던 시카리들에 관하여, 그리고 실바가 마사다 요새를 포위 공성하는 데 전념한 것과 엘르아살이 로마 병사들에게 한 연설에 관하여
제9장 두 명의 부녀자와 다섯 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마사다 요새 안의 모든 주민이 엘르아살의 논리에 설득된 경위와 모든 사람이 서로의 손에 죽게 된 경위
제10장 많은 시카리들이 알렉산드리아로 도피하였다가 그곳에서 큰 위험에 처하게 된 경위,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 전에 대제사장 오니아스가 그곳에 세웠던 성전이 파괴된 경위
제11장 시카리 중 하나인 요나단이 구레네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무고한 자들을 거짓으로 고소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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