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하나의 사물에서 출발해 인간으로 돌아오는 본격 인문 에세이다. 시계라는 손목 위의 한 사물을 통해, 현대인의 시간 감각이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를 추적한다.
1883년 미국 표준시 도입에서 2025년 AI 의료 예측까지, 약 140년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스위스 쥐라 계곡의 장인 전통과 실리콘밸리의 데이터 자본주의가 손목에서 충돌하는 지점을 그리되,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두 시계가 만드는 두 시간을 나란히 놓고, 그 차이의 지형도를 그린다. 그리고 두 시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세 번째 좌표로 ‘숨’을 제시한다.
이 책은 처방전이 아니다. 모르고 집으면 습관이고, 알고 집으면 선택이라고만 말한다.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주권이 거기에 있다고. 정신의학자, 기업가, 경영학자, 철학자, 배우—다섯 직역에서 보낸 추천사가 보여주듯, 이 책은 시계 책이지만 시계 책에 머물지 않는다.
출판사 리뷰
“처음으로 손목을 내려다보게 됐다.” - 배우 류승룡
손목 위의 물건 하나가 하루의 질감을 바꾼다. 이 책은 그 사실에서 출발한다.
아날로그 시계를 차면 시간이 흐른다. 초침이 원을 그리고, 알림은 오지 않고, 시간은 끊기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를 차면 시간이 쪼개진다. 걸음 수, 수면 점수, 심박수, 아직 채우지 못한 활동 링—시간은 데이터가 되어 화면 위에 나열된다. 한 사람이 보내는 같은 하루인데, 손목 위의 시계가 바뀌면 시간이 바뀐다.
저자는 이 경험을 스위스 시계 300년 역사 위에 놓는다. 1883년 미국 전역에 표준시가 도입되던 날, 농부가 회중시계를 꺼내 들던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백 개의 지역 시간이 네 개로 통합되고, 시간의 주인이 태양에서 철도로 넘어간 날. 그 9분의 차이가 사라진 순간부터, 시간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제도가 되었다.
1장은 시간이 어떻게 돈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에서 테일러의 스톱워치까지, 시간이 경제적 자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2장은 스위스 쥐라 계곡으로 들어간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270년, 브레게의 투르비용, 쿼츠 쇼크에서 살아남은 블랑팡, 발레 드 주의 독립 시계공 필립 듀포—태엽과 톱니바퀴가 만들어 낸 ‘영원의 시간’을 기록한다. 3장은 센서와 알고리즘이 손목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조니 아이브의 첫 구상, 애플 하트 스터디 41만 명, ECG 기능의 FDA 승인—시계가 착용자를 읽기 시작한 순간을 포착한다.
4장에서 두 시간이 충돌한다. 파텍 필립의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맡아두는 것”과 애플의 “건강의 미래는 당신의 손목 위에”가 나란히 놓인다. 스마트워치를 벗었는데도 진동을 느끼는 ‘유령 진동 증후군’, 수면 점수에 집착하다 잠을 망치는 ‘오소솜니아’, 걸음 수가 보험료를 결정하는 바이탈리티 프로그램—센서가 몸에 새기는 흔적과 제도로 확장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동시에, 기계식 시계의 그림자도 외면하지 않는다. 포장을 뜯지 않은 채 정가의 열한 배에 낙찰되는 시계, 데이터에서 벗어날 자유가 가장 비싼 자유가 되는 시대다.
이 책의 힘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마트워치를 벗어라.”도, “기계식 시계를 차라.”도 아니다. 두 시계가 만드는 두 시간을 나란히 놓고, 그 차이의 지형도를 그린다. 그리고 두 시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으로 ‘숨’을 놓는다. 바늘도 아니고 센서도 아닌, 횡격막의 수축과 이완으로만 존재하는 시간. 그것이 이 책이 찾은 세 번째 좌표다.
시계에 관한 책이지만, 결국 시계를 차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아침마다 서랍장 앞에 서서, 오늘은 어느 쪽을 찰까 고르는 그 사람. 모르고 집으면 습관이고, 알고 집으면 선택이다. 이 책은 그 ‘앎’을 위한 지형도다.
빈티지 시계였다. 내가 태어난 해 즈음에 만들어진 시계. 로마 숫자가 새겨진 다이얼, 금과 은이 섞인 케이스. 수십 년 전 누군가의 손목에 있다가, 수십 년 뒤 내 손목에 왔다. 태엽을 감으니 돌아갔다.
그 시계는 크라운 옆 케이스에 흠집이 몇 개 있다. 내가 만든 것인지, 이전 주인이 남긴 것인지 알 수 없는 흠집들. 수면 점수도, 걸음 수도, 심박수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냥 흠집만 있다. 이 흠집들은 누구에게도 전송되지 않고, 어떤 서버에도 저장되지 않는다. 다만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흠집과 기록. 그 시계의 흠집이 내 시간이라면, 한강의 기록은 내 다른 시간이다. 하나는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남아 있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어느 쪽이 더 진짜인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둘 다 진짜다. 다만 물성이 다른 시간이다.
(중략)
책상 앞에 서서, 두 시계가 다른 시간을 준다는 걸 아는 것. 어느 쪽을 집든, 왜 그것을 집는지 아는 것. 모르고 집으면 습관이다. 알고 집으면 선택이다. 이것이 아마도, 시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문장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을 집든, 손목에 차기 전에, 한 번 숨을 쉰다. 의식해서가 아니다. 아침이니까. 일어났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들이쉬고, 내쉬고, 시계를 찬다.
이 순서만은, 바뀐 적이 없다.
- 에필로그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재영
공원(公園).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숨 쉬고 쉬어가는 곳. 글이 그런 자리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택한 이름이다. 사물에서 시작해 인간으로 돌아오는 글을 쓴다.아날로그 시계와 스마트워치를 번갈아 차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손목에 닿는 물건이 바뀌면 하루의 질감이 달라진다는 것. 그 경험은 질문이 되었다. 스위스의 300년과 실리콘밸리의 10년은 시간을 어떻게 다르게 다뤘는가. 『두 개의 시계, 두 개의 시간』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 책이다.연세대학교에서 MBA를 마쳤다. 삼성경제연구소와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일했으며, IT 스타트업 대표를 지냈다. 2015년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서울 전시에 도슨트로 참여하며 스위스 시계 장인들의 세계와 처음 깊이 맞닿았다.현재 인터밸류 대표. 강연과 글로 의사결정자들을 만난다. 사물 인문학 시리즈의 다음 책들을 준비하고 있다. 가제 『더 힌지: 가위의 인문학』, 『인그레이빙』. 블로그 blog.naver.com/gongwonwriter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숨
제1장. 우리는 언제 시간을 잃어버렸는가
두 개의 정오
시간이 돈이 되던 날
손목 위로 올라온 시간
제2장. 영원을 만드는 사람들
영원의 산실
영속성과 아름다움
쿼츠의 습격과 영속성의 반격
영속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제3장. 나를 읽는 시간
손목을 향한 경주
One More Thing
트로이의 목마
제4장. 두 개의 시간
손목 위의 두 언어
감각의 외주
제도가 된 손목
영원의 그림자
두 개의 시간
못다 한 이야기 - 아직 오지 않은 정오
에필로그. 여전히, 숨
부록 1. 시간의 연대기
부록 2. 시간의 이름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