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5·18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을 맞아 출간한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은 민주화투쟁의 위대한 상징인 김대중과 이희호가 감옥 안팎에서 남긴 기록을 담았다. ‘3·1민주구국선언’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김대중이 수감되었던 1976~1982년 사이의 각종 옥중기록과 이희호의 메모, 편지, 국제 구명활동 자료, 그리고 재판기록 등을 수록했다. 특히 이희호가 작성한 옥중 면회 메모와 국내외 인사들에게 보낸 편지 등 친필기록이 최초로 공개되어,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과 민주화운동의 국제연대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감옥 안에서 미래를 준비한 김대중과
감옥 밖에서 세계를 움직인 이희호의
위대한 동행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은 민주화투쟁의 위대한 상징으로서 ‘3·1민주구국선언’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김대중이 수감되었던 1976~1982년 사이의 각종 옥중기록과 이희호의 메모, 편지, 국제 구명활동 자료, 그리고 재판기록 등을 수록했다. 특히 이희호가 작성한 옥중 면회 메모와 국내외 인사들에게 보낸 편지 등 친필기록이 최초로 공개되어,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과 민주화운동의 국제연대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동초라는 이미지 뒤에 가려진 고통
“온몸이 아파서 어떤 자세를 취해도 잘 수 없었습니다. 교도소장이 치료를 받으라고 말했지만, 저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의 손에 그들이 지정하는 의사의 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1978년 12월 29일, 49쪽)
책은 장기간 투옥 중 김대중이 겪어야 했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대중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발생한 의문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심각한 고관절 신경통에 시달렸지만, 수감 중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박정희 정부 시기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겪었던 김대중은 암살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후 김대중은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병실은 사실상 감옥보다 훨씬 더 나쁜 ‘특별한 지옥’이었다. “제발 교도소로 보내달라”고 단식까지 할 정도였다. 김대중은 감옥병실에 수용된 채 정보사 요원과 군인을 포함한 수십 명의 감시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펜과 종이조차 지급되지 않았고, 창문이 가려진 방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햇빛을 보거나 운동할 수도 없었다. 독서 역시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었다.
병원에서도 치료를 거부한 김대중의 고관절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다. 만성 통증 정도에 머물렀던 증상은 출소 직후에는 혼자 일어서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졌고, 이후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당시 이희호가 직접 그린 서울대병원 감옥병동 구조도는 이곳의 공간적 특성과 김대중이 겪은 고통의 실상, 그리고 독재권력의 다양한 인권탄압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이희호의 면회 메모에 따르면 김대중은 이 시기 “자포자기하며 발광 직전까지도 간 적이 있다. … 내 일생 이토록 치욕스럽고 괴로웠던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온화하고 강인한 ‘인동초’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김대중의 고통이 이 책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못으로 눌러쓴 옥중 메모
“요사이 당신의 건강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 현재의 나를 도우는 최대의 길도 당신 건강이니 내 걱정을 생각해서라도 소홀히 생각 말도록 거듭 당부하오.” (1978년, 39쪽)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김대중은 바깥의 가족을 먼저 걱정했다. 2022년에 공개한 못으로 눌러쓴 메모 한 편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다. 서울대학교 감옥병실에 수감되었을 당시 김대중은 펜과 종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고, 면회 내용 역시 감시받았다. 김대중은 종이 위에 못으로 글씨를 눌러쓴 뒤 면회 때 이희호에게 몰래 전달하곤 했다.
장기간의 투옥은 김대중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김대중은 옥중에서 가족의 건강과 생활을 걱정했고, 이희호 역시 바깥에서 생계와 구명운동, 당국의 감시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자신의 건강보다 가족의 안부를 염려하는 김대중의 메모는 민주화운동 지도자의 모습뿐만 아니라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고뇌도 함께 보여준다.
■김대중을 세상과 세계로 연결한 이희호
“각하께 호소하는 바입니다. 현재의 병원 수용은 불법이오며 국고의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 이감신청서 사본과 요구사항에 관한 건의 사본을 참고로 동봉합니다.” (1978년 9월 25일, 이희호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73쪽)
이희호는 3·1민주구국선언으로 투옥된 인사들의 가족들과 함께 공개재판을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감옥 밖에서 독재정권에 맞서는 투쟁의 주체로 활동했다. 김대중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후에는 교도소장과 법무부장관, 박정희 대통령에 편지를 보내 김대중과 정치범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감옥병실 수용의 불법성과 비인간적 처우 문제를 지적하며 법에 따른 수형자 처우를 강하게 촉구했다.
이희호는 감옥 밖에서 김대중에게 세상과 세계를 향한 창이었고 매개자였으며 대리인이었다. 신군부가 꾸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김대중이 다시 투옥된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가족에게 10분 동안만 허용된 면회를 통해 김대중에게 국제 뉴스와 국내 정세를 극단적으로 압축해서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에 전달했다.
당시 김대중은 신문과 잡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희호는 물가상승률과 유가, 차관 문제, 외교 현안 같은 정치·경제 정보를 메모 형태로 압축해 전달했다.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에는 이런 옥중 면회 메모들이 최초 공개되었다. 이 자료들은 김대중이 옥중에서도 현실감각을 잃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통로였다.
“오늘 아침 군사법원이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 그러한 판결이 집행된다면 귀하의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1980년 9월 17일 빌리 브란트가 전두환에게 보낸 편지, 393쪽)
이희호는 국제사회에 김대중의 상황을 알리는 데도 힘썼다. 미국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 일본 총리 미키 다케오 등 해외 정치지도자와 국제 인권단체에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김대중이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자 국제 구명운동은 더욱 확대되었다.
책에는 이희호가 당시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전두환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재판 문제와 관련된 조치를 요청하는 카터 대통령의 편지와 사형이 집행될 경우 전두환 정권이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편지는 당시 김대중 사형 판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희호가 단순히 정치지도자의 배우자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연대를 형성한 김대중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동지이며 지적인 동반자였음을 보여준다.
■감옥 안팎에서 남긴 두 사람의 기록
김대중은 사형을 선고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정치보복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또한 영상으로 공개되어 널리 알려진 대로 김대중은 사형수 시절 정보화 사회와 인공지능 시대를 예견했다. 이 책은 46년 전 남겨진 기록이 오늘날 더욱 현실적인 문제의식으로 읽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책에 담긴 글과 사진, 메모와 편지는 군사정권 시기 정치범들이 겪은 수난과 민주화운동, 국제 구명운동의 실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은 감옥 안 김대중과 감옥 밖 이희호가 함께 남긴 기록을 통해, 옥중에서 고통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고 자기발전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이 책은 독재정권 아래서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투쟁의 역사를 증언한다.
온몸이 아파서 어떤 자세를 취해도 잘 수 없었습니다. 교도소장이 치료를 받으라고 말했지만, 저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의 손에 그들이 지정하는 의사의 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1978년 12월 29일, 석방 직후 환영 모임 연설)
구속은 본질적으로 협박 수단으로서 협박은 국민이 두려워할 때 정부의 무기다.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명예로 알며 기꺼이 구속될 때는 압제자의 무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때는 민중의 무기가 된다. (1978년, 서독 인권단체에 김대중의 고통을 알리는 이희호의 글)
베트남 정부의 독재는 부패와 억압의 체계를 강하게 하고, 국민은 그것을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반독재의식도 강하고 동시에 반공의식에 있어서도 강합니다. 우리 국민은 반공과 민주주의를 같은 문제로 생각할 수 있고 그만큼의 역량도 갖고 있습니다. (1976년 12월 13일, 3·1민주구국선언 재판 2심 6차 공판 진술)
목차
위대한 동행, 감동의 인간서사┃박명림
제1부 3·1민주구국선언
1. 김대중의 기록
2. 이희호의 기록
3. 3·1민주구국선언 재판기록
제2부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1. 김대중의 옥중단상
2. 옥중 녹취록과 자작시
3. 이희호가 준비한 옥중 면회 메모
4. 이희호의 활동
5.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판기록
6. 구명운동 편지
민주화투쟁의 위대한 역사적 상징┃장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