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미친 지리’ 위에 새겨진 인류학적 기록, 칠레라는 거대한 실험장『긴 매혹, 칠레』는 칠레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 시대의 복잡한 공존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인문학적 기록이다.
칠레는
북부의 사막, 중부의 도시, 남부의 파타고니아(이러한 극단적이고 변칙적인 지리 조건을 ‘미친 지리(Geografia loca)’라고 한다
)라는 극단적인 지형을 가진 나라다. 이 책은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칠레를 새롭게 읽어 내려간다. 여기서 말하는 공존은 단순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조화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 개발과 보전, 원주민과 정착민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아타카마 사막의 자원 경쟁부터 중부의 정치·경제적 모순, 파타고니아의 보전과 개발의 이면까지,
저자는 칠레라는 거대한 실험장을 통해 완성된 질서가 아닌 끊임없이 흔들리고 구성되는 삶의 층위를 추적한다.
전주람 교수는 칠레라는 공간을 ‘공존’이라는 정교한 인문학적 프레임으로 해부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통번역학을 전공하고, 국제학 석사와 중남미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저자는 단순한 여행 기록을 넘어선 전문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학술적 깊이를 토대로 북부의 태평양전쟁부터 중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남부의 파타고니아 보전 논쟁까지, 칠레의 역사를 지리적·경제적 관점에서 꿰뚫는다. 현지 밀착형 연구를 바탕으로 칠레를 단순한 남미의 휴양지가 아닌, 모순과 역동이 교차하는 ‘거대한 실험장’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책의 핵심 명제는
‘공존은 완성된 질서가 아니라 계속 흔들리고 다시 구성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칠레의 영토가 역사적 충돌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며, 자연과 산업이 맺어온 긴장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성찰의 가치를 제공한다. 단순히 칠레라는 국가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 환경 문제, 불평등과 같은 보편적인 난제를 칠레라는 거울을 통해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칠레의 험준한 자연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은, 우리에게도 복잡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헤쳐 나가는 공존의 지혜를 전달한다.
아타카마 사막에서 파타고니아까지, 극한의 자연이 빚어낸 칠레의 독특한 삶의 궤적칠레는 남아메리카 대륙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뻗은 나라다. 동서로는 놀랄 만큼 좁고 남북으로는 극단적으로 길다.
북쪽에는 사막이, 동쪽에는 안데스산맥이, 서쪽에는 태평양이, 남쪽에는 남극과 가까운 극 남부 해역이 자리한다. 이러한 조건은 칠레를 대륙에 붙어 있으면서도 마치 하나의 섬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바로 이 특이한 지리적 조건이 칠레를 서로 다른 기후와 생태, 산업과 생활 방식, 역사적 경험이 한 나라 안에 병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칠레는 오래 바라볼수록 더 깊이 이끌리고, 오래 간직하고 싶어지는
‘긴 매혹’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칠레를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읽어 보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존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조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재, 보전과 개발, 원주민과 정착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긴장과 타협, 그리고 생존을 위한 적응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칠레의 여러 지역에서 공존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었다. 때로는 폭력과 배제, 불균형 위에서 가까스로 유지되었고, 또 때로는 저항과 조정을 거치며 새롭게 만들어져 왔다. 그런 점에서 공존은 이미 완성된 질서라기보다 계속 흔들리고 다시 구성되는 과정에 가깝다.
상반된 가치가 겹쳐 존재하는 사회이 책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축은 칠레 사회가 겪어 온 정치적·경제적 공존의 문제이다.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비교적 제도 정치가 일찍 자리 잡은 나라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20세기 후반에는 극단적인 정치·경제적 실험을 경험하기도 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가 출범한 경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군사 독재와 신자유주의 개혁은 칠레 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결과 칠레에는 민주주의의 전통과 권위주의의 기억, 성장의 성과와 불평등의 심화, 제도적 안정과 사회적 긴장이 오랫동안 겹쳐 존재해 왔다. 이런 점에서도 칠레는 상반된 질서와 가치가 한 사회 안에 오래 공존해 온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역별로 풀어내는 칠레의 입체적 풍경이 책은 칠레를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소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부의 아타카마에서 중부의 정치·경제 공간을 지나 남부의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지역에서 공존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또 흔들려 왔는지 따라가 보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칠레가 어떻게 오늘날 같은 영토와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독특한 지리, 다양한 기후와 자연환경, 그리고 그러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영토 확장의 과정을 따라가며 칠레라는 국가의 형성과 공간적 특수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북부의 태평양전쟁, 남부의 아라우카니아 점령, 남단과 이슬라 데 파스쿠아의 편입 과정을 통해 칠레의 국토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충돌과 국가 권력의 확장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제2장에서는 아타카마의 자연환경과 원주민의 삶을 살펴본 뒤, 왜 이 지역에 광물이 풍부한지, 그리고 이 풍요가 어떻게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동시에 물 갈등과 생태적 긴장을 낳아 왔는지 분석한다. 다시 말해 이 장은 메마르고 황량해 보이는 아타카마 사막이 사실은 오랫동안 칠레 경제를 먹여 살려 왔다는 역설을 통해, 칠레식 발전 모델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제3장에서는 칠레의 정치·경제적 중심지인 중부 지역을 배경으로, 20세기 후반 이후 칠레 사회가 겪은 급격한 전환을 살펴본다. 아옌데 정부의 사회주의 실험, 피노체트 군사 독재와 신자유주의 개혁, 그리고 민주주의 회복 이후에도 이어진 제도적·사회 경제적 긴장을 중심으로, 칠레 중부가 어떻게 현대 칠레의 모순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되었는지 분석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물 관리 체계와 메가 가뭄의 문제, 와인 산업의 발전과 같은 사례를 통해, 중부 지역이 단지 정치의 무대일 뿐 아니라 산업과 환경, 삶의 조건이 복합적으로 재편된 공간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제4장에서는 압도적인 자연과 보전의 상징으로 알려진 파타고니아가 실제로는 개발과 관광, 원주민의 역사, 지워진 기억과 복원의 서사가 교차하는 공간임을 보여 준다. 먼저 보전 기반 개발과 관광의 확대가 파타고니아를 어떻게 재구성해 왔는지 살펴보고, 이어서 원주민의 삶과 학살, 그리고 기억의 문제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파타고니아를 ‘순수한 자연’이라는 이미지로만 바라보지 않고, 공존의 가능성과 폭력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는 공간으로 읽고자 한다.
결국
이 책은 북부의 사막, 중부의 도시와 농업 지대, 남부의 파타고니아를 따라가며 칠레라는 나라를 이루는 서로 다른 자연과 역사, 산업과 기억의 층위를 함께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독자들은 이 네 개의 장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서로 다른 조건들이 치열하게 공존하는 칠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상생 연대기’는?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HK+사업단은 ‘21세기 문명 전환의 플랫폼, 라틴아메리카: 산업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지속 가능한 생태 문명 패러다임을 설정하기 위해 투여하는 다양한 노력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추구하는 대안적 세계관과 삶의 방식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본 사업단은 연구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생태문명 총서’, ‘생태문명 교양총서’, ‘부엔 비비르 총서’와 ‘라틴아메리카 상생 연대기’ 신서를 기획해 출판하고 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별 생태 문명에 관해 다루는 ‘라틴아메리카 상생 연대기’ 신서는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생태에 관한 독창적인 도전과 성취,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폭넓게 소개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생태적 다양성과 포용적 연대의 정신을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북부의 사막, 중부의 도시와 농업 지대, 남부의 파타고니아를 따라가며 칠레라는 나라를 이루는 서로 다른 자연과 역사, 산업과 기억의 층위를 함께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독자들은 이 네 개의 장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서로 다른 조건들이 치열하게 공존하는 칠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들어가며
칠레의 주요 지형은 세 축으로 이루어진다. 즉, 서쪽의 해안 산맥, 중앙의 계곡, 동쪽의 안데스산맥이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뻗어 있는 구조다. 칠레 작가 벤하민 수베르카소(Benjamin Subercaseaux)는 이러한 극단적이고 변칙적인 지리 조건을 ‘미친 지리(Geografia loca)’라고 불렀다.
⏤제1장 대륙 속의 섬, 칠레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