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인자 시집. 생과 사를 가르던 시대를 건너온 목소리가 가장 낮은 자리의 생명으로 이 시집에 스며있다. 시인은 여성의 몸으로 견뎌낸 시대의 가난과 노동, 그리고 참혹의 시간을 지나오며, 끝내 사라지지 않는 생의 감각을 지렁이의 몸에 겹쳐 놓는다.
“우리 집 마당에는 / 오래된 지렁이 나라가 있어”라는 고백으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의 냉혹한 현실을 교차시킨다. 비 오는 날 기어오르던 지렁이를 오체투지의 수행처럼 바라보던 유년의 시선은, 이제 거짓 용들만 소리치는 세계 앞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갯벌의 여인들이 젖빛 암물 한 모금으로 삶을 버텨냈듯, 이 시집 속 생명들은 가장 낮고 더러운 자리에서조차 스스로를 지탱해 온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상승의 서사는 어느새 차단되고, 지렁이는 더 깊은 땅속으로 파고들 뿐이다.
이 시집은 상흔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밟혀도 제대로 꿈틀거리지 못하는 지렁이의 몸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꿈과 윤리의 감각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지금 이 세계에서, 진짜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존재는 누구인가.
출판사 리뷰
죽음의 시대를 건너온 목소리,
젖빛 암물처럼 깊고 고요하게 스며드는 기억,
상흔 끝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한 생의 시.
『눈이 멀도록 환하겠다』 생과 사를 가르던 시대를 건너온 목소리가 가장 낮은 자리의 생명으로 이 시집에 스며있다. 시인은 여성의 몸으로 견뎌낸 시대의 가난과 노동, 그리고 참혹의 시간을 지나오며, 끝내 사라지지 않는 생의 감각을 지렁이의 몸에 겹쳐 놓는다.
“우리 집 마당에는 / 오래된 지렁이 나라가 있어”라는 고백으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의 냉혹한 현실을 교차시킨다. 비 오는 날 기어오르던 지렁이를 오체투지의 수행처럼 바라보던 유년의 시선은, 이제 거짓 용들만 소리치는 세계 앞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갯벌의 여인들이 젖빛 암물 한 모금으로 삶을 버텨냈듯, 이 시집 속 생명들은 가장 낮고 더러운 자리에서조차 스스로를 지탱해 온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상승의 서사는 어느새 차단되고, 지렁이는 더 깊은 땅속으로 파고들 뿐이다.
이 시집은 상흔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밟혀도 제대로 꿈틀거리지 못하는 지렁이의 몸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꿈과 윤리의 감각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지금 이 세계에서, 진짜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존재는 누구인가.

오랜 세월 앓고 있어
눈 퀭하고 앞섶 벌어져 있다
찬바람 몰아쳐도 여밀 수도 없다
가끔 시궁쥐가 찾아와 먹을 것을 찾지만
빈손이다
동굴처럼 외로워 거미줄만 흔든다
된장찌개 냄새를 기억하는 연탄아궁이
부뚜막의 따스함으로 궁핍을 잠재우던
빛나던 날들의 기억으로 버텨온 것
사랑이라 했던가 그러나
거들떠보는 이 하나 없는 수모
허망의 늪에서 벗어나 눕고 싶다
오만으로 등 돌린 그 앞에
와르르
천둥 치듯 무너지고 싶다
-빈집 1
날된장에 밥을 먹는다
옹기 안에서 곰삭은 세월만큼 부드럽게 풀린
황금같이 빛나는 된장
마늘도 파도 고추도 밀치고
된장만으로 밥을 먹는 이 더운 날
날된장에 보리밥 한 덩이
설움처럼 씹던 여인네
비단치마 잘잘 끌지도 못하는 시앗살이
그만 팔자 고치라면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그렁그렁 눈물 지으며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렸다던 여자
그 여자 떠난 후
나도 날된장을 먹는다고
가난을 추억으로 삼키던 어머니
날된장 앞에서
서른다섯 생애의 어머니와
옛 여인들의 쓸쓸한 사랑법을 생각한다
가난의 늪에서도 찌들지 않는 추억 한 자락
고향집 부뚜막에 깃든 따스함으로
삶의 뒤안길에 묻힌 흐린 묵화 한 폭
맑은 바람인 듯 아릿한 눈물인 듯 다가오는
달콤하고 간간한 생의 밑반찬
-날된장에 밥을 먹으며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인자
1940년 인천 출생1959년 인천사범학교 졸업1959년부터 40년간 김포, 안동, 봉화, 문경,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목차
05 · 시인의 말
▶ 1부 검은 구름 아래서 붉게 울었다
14 · 해창에서
15 · 팔망아지
17 · 빈집 1
18 · 자작나무 서 있는
20 · 날된장에 밥을 먹으며
22 · 가을 들판
24 · 먼 기억
26 · 보리밥을 짓다가
28 · 소나무배기 집
30 · 찻잔만 같아라
32 · 늦가을
33 · 흉몽
▶ 2부 또 눈물 나도록 이쁘다
36 · 희망 사항
37 · 원망
38 · 눈이 내리네
39 · 종이컵
40 · 찻물 우리며
42 · 암물
44 · 물오리
46 · 동의나물 곁에서
48 · 발길질
50 · 낮은 자리
51 · 오이지
53 · 얼간재비 고등어를 사다
55 · 비
▶ 3부 그리움 불꽃 되어 하늘에 닿네
58 · 관계
60 · 꼭두서니
62 · 빈집 2
64 · 은어
66 · 애기똥풀꽃
68 · 무지개
70 · 단풍 타는데
72 · 반딧불이
74 · 밤 줍기
76 · 지리산
80 · 비 오는 날
82 · 개나리
▶ 4부 환장하게 웃고 있다
86 · 남지장사南地藏寺
87 · 잠
89 · 까마귀 떼
91 · 아침나절
94 · 겨울 호수
95 · 조팝꽃
97 · 게를 보며
99 · 잡초
100 · 복사꽃
101 · 풍경
102 · 사는 동안
103 · 송화 날리는 날
▶ 5부 쐐기풀 한 줌 필요해
106 · 부엌에서
109 · 지렁이
111 · 쓸개
113 · 영산홍 이불
115 · 땅 풀릴 무렵
117 · 검은 새
118 · 소금
119 · 요즈음
120 · 가을 들판에서
122 · 열두 살 설움
▶ 6부 해처럼 환히 웃겠다
126 · 술상 머리에서
128 · 속 쓰린 아침
130 · 개구리밥
131 · 씀바귀꽃
132 · 잡초를 뽑다
133 · 시린 손
134 · 늦은 봄날
135 · 가벼운 혼
137 · 개망초
139 ·┃발문┃존재를 밀고 나아가는 기억의 서사
_장수철(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