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9년 시집 『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13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던 서대선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삶의 주변부로 몰려 고통이 일상화된 여성들이 출현하여 읽는 이의 시야를 뿌옇게 연민으로 채우고 있다. 모진 인생의 질곡을 겪어내야만 했던 이 땅의 여성들이다. 1950∼70년대의 시간을 벅차게 헤쳐간 세대들이라면 생생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시인이 펼쳐낸 인물의 이미지와 사연에 호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의 제목이 발췌된 시 「젤소미나」는 이번 시집의 기류를 몰아가는데 알맞은 역할을 한다. 익히 알고 있는 1950년대 명화 〈젤소미나〉는 관객들에게 애잔한 슬픔의 소용돌이를 일으켜준 바 있다. 폭력적 남성에게 식민화된 하위주체로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펴지 못한 채로 젊음을 고스란히 죽음에 헌납했던 여성, 자신을 모질게 학대하는 남성 광대에게 애절한 눈빛을 드리우며 약자의 비극을 저릿저릿하게 써나가곤 했던 여린 몸, 그 몸의 표정은 내내 남아 우리에게 진한 페이소스를 심어주곤 한다.
출판사 리뷰
모진 인생의 질곡을 겪어내야 했던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한 서대선의 시들
2009년 시집 『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김남조 시인의 특별 추천으로 2013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던 서대선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에올리언 하프』를 출간했다.
서대선의 시집 『에올리언 하프』에는 삶의 주변부로 몰려 고통이 일상화된 여성들이 출현하여 읽는 이의 시야를 뿌옇게 연민으로 채우고 있다. 모진 인생의 질곡을 겪어내야만 했던 이 땅의 여성들이다. 1950∼70년대의 시간을 벅차게 헤쳐간 세대들이라면 생생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시인이 펼쳐낸 인물의 이미지와 사연에 호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의 제목이 발췌된 시 「젤소미나」는 이번 시집의 기류를 몰아가는데 알맞은 역할을 한다. 익히 알고 있는 1950년대 명화 〈젤소미나〉는 관객들에게 애잔한 슬픔의 소용돌이를 일으켜준 바 있다. 폭력적 남성에게 식민화된 하위주체로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펴지 못한 채로 젊음을 고스란히 죽음에 헌납했던 여성, 자신을 모질게 학대하는 남성 광대에게 애절한 눈빛을 드리우며 약자의 비극을 저릿저릿하게 써나가곤 했던 여린 몸, 그 몸의 표정은 내내 남아 우리에게 진한 페이소스를 심어주곤 한다.
『에올리언 하프』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사막 장미(dessert rose)」에서 그 결정(結晶)을 보여준다. 서대선 시인은 시집의 명제에 해당하는 작품을 제출한 뒤 이 명제들을 만족시킬 사례들을 하나하나 증명해보이는 것이다. “지아비”와 “외동아들”까지 “바다에 묻은/ 한 여자”는 더 이상 내려설 바닥이 없는 여자다. 삶의 물기를 모두 앗긴 여자는 소금사막에서 장미꽃으로 피어나 “장미 여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시인은 소금사막에서 증발하는 생명을 담보로 결정체 “소금꽃”이 된 내력을 여러 시편에 나누어서 들려주고 있다. 소금꽃은 아마도 대단한 밀도를 지녔을 것이고 유난히 투명할 것이다. 장미 꽃잎처럼 여러 곡절이 접혀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 속에서 각 시편들은 각각의 패턴을 이어 또 하나의 텍스트로 직조된다. 새롭게 직조된 텍스트에는 시인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흐름이 이어지며 정렬되곤 한다. 이는 인간 의식의 본능적 논리성에 의한다고 믿고 싶다. ‘의식비평’이 한 사람의 전 작품을 모아놓고 수시로 오가며 글쓴이의 의식을 찾아가는 일도 여기서 비롯될 것이다.
서대선 시인의 『에올리언 하프』는 시집 제목과 상응하는 시편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즉 스스로 울려주는 울림의 힘을 제대로 지닌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번잡한 수사를 소거하고 해상도 높은 정황을 제시, 읽는 이에게서 채워질 의미를 미리 점거하지 않는 너그러움의 시 쓰기를 따라가는 기쁨이 곧 시집을 읽는 기쁨을 제공한다. 단순한 읽기로서의 독서가 아닌, 쓰기로서의 독서를 제공하는 풍요로운 시집이기 때문이다.
젤소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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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같던 여자
회초리도 견디며
숨죽여 울기만 했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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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로
버려진 낯선 바닷가에서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바람에 깎여서
에올리언 하프**가 되어버린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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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에 흔들리던 봄날
낯선 마을의 굴뚝
저녁 연기,
아침 바다 금빛 날개
낮은 담장 안
아기 기저귀,
동전 구르는 소리
노인의 목젖 울림,
그리고
눈물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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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젤소미나
일몰 바다를 향해 선
늙은 말,
말갈기를
토닥여주던
여자
길 위의 여자,
젤소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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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데리코 펠리느 감독의 1954년 작 영화 〈길〉의 여자 주인공. 무교양적 주인공 짬파노와 서정적 자아 젤소미나가 보여주는 삶의 행로.
✽✽에올리언 하프(Aeolian Harp) : 자연의 바람이 부는 대로 소리내는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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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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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데기
열네 살 미자,
아버지 노름빚에
팔린 아이,
누렇게 뜬 떡잎인 채, 이삼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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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함바집 귀퉁이 엎어진
홀아비 잡역부 만났다지
세상 허기진 사내 하나 만났다지
쪽방 뜨락엔 백일홍 피어났다지
다폴다폴 채송화도 난만하였다는데
꽃 지고, 꽃 지고 없는 어느,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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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흙더미에 묻힌 사내 몸에
엎어져 흐느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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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닮은 유복자 아들 안아올리고
진자리 마른자리 허리 펼 날 없었어도
공고 나온 아들 작업복 입은 모습
남편 살아온 듯 글썽이며
밝은 날 오길 기다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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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작두에 다리 잘린 아들
재활병동에서 새우잠 설치다
잘린 다리 발가락이 가렵다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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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 흩뿌리는 세상
아들의 없어진 발가락을
긁어주는 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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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의 여자, 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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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기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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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껍질을 잘게 썬다
고구마껍질도 잘게 썬다
베춧국 끓이려
텃밭 움막 속에서 꺼낸 고갱이 배추
신문지를 벗겨내고
겉잎은 떼어내 잘게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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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껍질, 고구마껍질, 배추 겉이파리는
뒷둔덕 골짜기
새끼를 기르는
추운 고라니 먹이가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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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현관에서
기다리는 길야옹이는
고등어 굽는 날 두 귀를 쫑긋거리며
혀를 날름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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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겨울을 건너는
자목련, 별목련, 벚나무 가지에는
물까치, 직박구리, 까치,
작은 겨울 철새들이 깃을 쉬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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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지은이 : 서대선
경상북도 달성에서 출생하였다. 한양대학교 졸업(전교 수석), 단국대학교 대학원 특수교육 전공 석박사 수료(교육학 박사). 중등학교 영어교사를 거쳐 신구대학 교수로 재직. 2009년 시집 『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김남조 선생 특별 추천(『시와시학』, 2013)으로 등단했다.시집 『천 년 후에 읽고 싶은 편지』(동학사, 2009), 『레이스 짜는 여자』.(서정시학, 2014), 『빙하는 왜 푸른가』(문학세계사, 2019) 등이 있으며, 시평론집 『히말라야를 넘는 밤새들』.(포엠포엠, 2019)이 있다.2013년 『시와시학』 신인상, 2014년 홍조근정 훈장, 2014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 문학 부문, 2022년 한국경제문화 대상 문학 부문 수상. 신구대학교 명예교수, 문화저널21 문학담당 편집위원.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사막 장미(desert rose) · 13
목이 긴 여자 · 14
미자 · 16
가문 날의 여자 · 18
양귀비꽃 · 19
카페 뮐러 · 20
잊혀진 여자 · 22
첩이 된 여자 · 24
변기 닦는 여자 · 26
젤소미나 · 28
김이순 · 30
스크램블에그 만드는 여자 · 32
낮달 · 33
눈먼 언니의 가을 · 34
두 여자가 있는 풍경 · 35
학이네 집 문주란 꽃 · 36
2부
어린 죽음을 위한 송가 · 41
눈물은 화석을 남기지 않는다 · 42
문밖의 아이 · 44
중증발달장애아 위탁원 뒷산에 와서 우는 뻐꾸기 · 46
벙어리뻐꾸기 · 48
벼랑 · 49
무릎에 대한 생각 · 50
까미유 끌로델 · 52
고갱이 배추쌈을 먹으며 · 54
장님 들판의 봄 · 56
민들레법칙 · 58
얼음새꽃 · 60
청산도 1 · 62
청산 2 · 63
소릿길을 찾아서 · 64
포옹 · 65
3부
짝사랑 · 69
밖의 사내 · 70
나, 눈폭탄 되어 쌓이면 · 72
그런 사람 있다면 · 73
눈표범과 춤을 · 74
벼랑 위에 저 소나무 · 76
역류성 식도염 · 78
꽃 지는 날 · 79
상사화 · 80
해국(海菊) · 81
사각 우표 · 82
철새는 날아가고 · 84
달맞이꽃 · 85
맨몸의 성자 · 86
질경이 · 88
어느 재의 수요일 저녁 · 90
4부 울지 말아라
합창 · 93
밝은 연못 · 94
시골에 살아보니 · 96
그늘 만들기 · 98
지구인끼리의 인사 · 99
뭉게뭉게 · 100
청자원숭이 연적 앞에서 · 102
큰 새가 오지 않는다 · 103
휠체어에 앉다 · 104
다시 · 106
자리끼 · 107
백련꽃 들고 길을 가는데 · 108
군밤 · 109
민들레 편지 · 110
이토록 사소한 기쁨이 · 112
아침 인사 · 113
해설 거리화된 ‘연민’의 힘과 ‘살 만한 곳’의 충실한 표상들/ 한영옥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