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기후는 임계점을 넘어섰고, 트럼프는 다시 백악관에 돌아왔다. 가자에서는 학살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디지털 영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대화를 사유지로 만들었다. 헤겔이 '인륜'이라 부른 것—예의범절, 정직, 사회적 연대 같은 사회를 지탱해 온 불문율—은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지젝은 이 풍경에 ‘제로 포인트’라는 이름을 붙인다. 제로 포인트는 ‘바닥’이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더 나빠질 것이다. 제로 포인트란 우리가 기존 체제 안에서는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하강 나선에 갇힌 그 시점이다.
트럼프의 외설적 포퓰리즘은 ‘도둑질을 멈춰라!’라는 구호 아래 ‘향유의 도둑질’ 논리를 가동하며, 그를 떠받치는 디지털 봉건 영주들의 사유화된 공유지에서 우리는 지대를 바치는 ‘생산이용자’로 전락한다. 자국의 환상이 헛되다는 진실을 피하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이스라엘은 가자를 파괴하는 현실 속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지젝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함으로 인하여 공격받는다. 이 모든 풍경의 한가운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수치심과 존엄마저 빼앗으려 든다.
『제로 포인트』는 이러한 현실을 위로하지 않는다. 분명한 대안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분명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한다. 베케트의 문장처럼—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가자에서는 학살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우크라이나의 도시는 폐허가 된다. 트럼프는 다시 백악관에 돌아왔고, 유럽 곳곳에서 극우가 약진한다. 메타버스의 영주들이 우리의 대화를 감시하고, 기후는 임계점을 넘어선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슬라보예 지젝은 이 질문 앞에서 멈춰 선다. 『제로 포인트』는 답을 서둘러 내놓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답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사유의 자리, 그 ‘제로 포인트’로 우리를 데려간다.
[다시, 처음부터]‘제로 포인트’는 1922년 레닌이 쓴 비유에서 온다. 새로운 산 정상에 오르려다 후퇴한 등반가는 시작점, 즉 영점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힘과 유연성을 잃지 않는 한, 등반가는 결국 실패하지 않는다. 베케트의 문장처럼―‘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그러나 바닥이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더 나빠질 것이다. 제로 포인트란 우리가 기존 체제 안에서는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하강 나선에 갇힌 그 시점이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쉬워진 시대, 우리가 도달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젝, 가자 앞에 멈춰 서다]이 책의 2부는 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2023년 10월 17일, 지젝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 연단에 섰다. 하마스의 공격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그의 22분짜리 연설은, 헤센 주 반유대주의 담당관에 의해 거듭 방해받았다. 그가 말한 것은 균형 잡힌 중도의 입장이고, 바로 그래서 그는 공격받았다.
2부 「말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는 그 사건 이후 지젝이 일기처럼 써 내려간 가자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사건이 끝난 뒤 지나고 나서 명확성을 부여하는 회고 대신, 혼란과 절망 한가운데에서 사고가 전개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라캉의 수치심, 마렉 에델만의 유산, 푸코의 이란, 진실과 허구의 변증법―지젝 특유의 철학적 수사는 가자라는 구체적 비극 앞에서 다시 한번 현실과 날카롭게 충돌한다.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말만 하지 말고 뭔가 해!’ 이 말은 지혜처럼 들린다. 지젝은 이 ‘어리석은 지혜’를 뒤집으라고 말한다. 뭔가 하지만 말고 제대로 된 말을 해. 상황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고 진실을 말하는 일은, 행동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파괴하는 것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는 것도, 환상이 헛되다는 진실을 피해 ‘잔혹한 현실’ 속으로 도피한 결과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행동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명명할 언어다.
이 책의 부제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가 가리키는 곳이 바로 여기다. 트럼프와 메타버스, 코스트코 가이즈와 시진핑의 신보수주의, 푸틴의 ‘전통적 가치’와 가자 지구의 잔해 사이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에세이들은 결국 하나의 같은 질문을 향한다.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가자를 위한 철학]한국어판에는 정치철학자 배세진이 ‘가자를 위한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해제를 더하였다. 알튀세르-발리바르의 이론 전통 위에서 지젝을 읽는 이 해제는, 지젝 철학의 특징을 ‘현행성actualite의 철학―체계를 구축하지 않고 매 정세에 온 힘을 다해 개입하는 철학―’으로 짚어낸다. 그리고 묻는다. 가자 학살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우리에게 좌절할 시간이 있는가? 행동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이고, 적절한 장소는 어디인가?
답은 다소 평범하지만 그래서 무거워진다. 바로 ‘오늘날, 지금 여기.’ 그리고 이 ‘지금 여기’를 우리는 지젝을 따라 ‘제로 포인트’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점에서 다시]『제로 포인트』는 위로하지 않는다. 분명한 대안이 있다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다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모든 것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는 자리에서, 사유와 행동이 다시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영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만 우리는 그곳에 도착한 적이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제로 포인트는 그러므로 상황이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지점이 아니라―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훨씬 악화될 것이다―우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하강 나선에 갇혀, 기존 체제하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점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상습적인 무례한 언행과 명백한 거짓말이(그의 범행은 말할 것도 없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이데올로기적 승리를 거둔 것은 그의 지지자들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체제 전복적인 저항으로서 경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