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황순원문학상 수상, 옥스퍼드대 필독서 채택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탐구하는 차인표의 파격적 신간매번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새로운 시도로 문단의 주목을 이끈 소설가 차인표가 2년 만에 장편소설 『우리동네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에서는 전쟁 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인어사냥』에서는 인간중심주의와 욕망에 대한 고찰을, 『그들의 하루』에서는 삶과 분투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다룬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창작의 욕구과 한계,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해 밀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작품에는 매일 동네 도서관으로 출근해 소설을 쓰는 작가 ‘나’가 등장한다. 작가는 옛 고구려 화공인 ‘번각’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번각은 비운의 사건을 겪은 후 자신이 직접 본 것 외에는 절대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신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번각은 목숨을 볼모로 한 귀족의 묘화를 그려줄 것을 강요받게 되고, 그가 생전 포획했지만, 모습은 밝혀지지 않은 ‘용’의 그림을 반드시 포함할 것을 명받게 된다. 자신의 신념과 목숨이 걸린 위기 사이에서 번각은 오래전 용 사냥에 함께 나섰던 사람들의 기억을 마주하며 실체를 증명할 수 없지만, 기록으로 이어진 존재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한편, 현실에서 번각의 이야기를 써나가던 ‘나’의 앞에 어느 날 실제 용이 나타난다. 제멋대로 나타난 용의 형상은 소설가에게 영감을 주기는커녕, 작가의 욕망과 한계에 대해 계속 속삭이며 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소설가로서의 과제에 직면하여 고통을 느끼던 ‘나’는 와중에 동네 도서관 사람들과도 얽히며 점점 더 ‘쓰기’의 의미를 고뇌하게 된다.
현실과 소설을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서로 다른 시대와 목적을 지닌 인물들을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욕망’이다. 글을 완성하고자 하는 욕망, 누군가를 살려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 이 소설은 욕망을 개인의 결핍으로 해석하는 데서 더 나아가, 타인과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작용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이때 소설은 ‘용을 쫓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내 곁의 타인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창작, 그리고 기록에 대한 작가의 원동력은 결국 독자에게 있고, 역으로 독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기 위해 작가에게 도움을 얻는다. 특히 작중 인물인 창렬과 송이, 노신사, 출렁이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약한 이들을 끝까지 놓지 않으며, 소설은 그들에게 연민이 아닌 연결과 존중의 시선을 선사한다. 이러한 선순환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어주고 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다.
불확실한 존재를 쫓는 이들의 기록과욕망과 소통이 공존하는 ‘우리동네 도서관’『우리동네 도서관』은 욕망과 소망의 상징인 ‘용’ 쫓는 이야기로 시작해, 끝내 타인의 삶과 외로움을 비추는 서사로 나아간다. 극심한 가뭄 속에서 비를 부르기 위해 대륙으로 향하는 을탄의 기록은 이러한 여정의 한 축을 이룬다. 병들어 가는 백성들의 한 줄기 희망을 책임져야 하는 을탄과 그의 무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용’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주는 희망이다. 이어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 ‘번각’ 역시 다르지 않다. 오직 본 것만 그리겠다는 신념을 지닌 그는, 존재하는지 믿을 수 없는 ‘용’을 그리기를 거부하지만 생존의 위협 앞에서 흔들린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진 용의 존재를 추적하게 된다.
이야기가 현실로 넘어오며, 도서관에서 용에 대한 글을 쓰는 한 작가가 등장한다. 그는 소설을 통해 용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지만 정작 용은 그의 한계를 지적하며 끊임없이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시험하고,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의 사연 역시 번번이 그의 집중을 방해한다.
고구려시대 인물들의 서사와 작가의 현재가 교차하며 동시에 진행되는 이 작품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에 대한 작가의 고뇌와 독자의 의심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우리동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두 가지의 위치에 놓여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묶여있는 도서관의 특수한 폐쇄성은 욕망의 집결지로서의 역할을,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개방성은 소통의 창구로서 역할 한다. 이 두 가지 기능을 ‘용’이라는 매개체로 엮어, 작가와 독자가 소설가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을 끝내 서사화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창작자로서의 욕심을 표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소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을 끝내 놓지 않으려는 시도누군가의 독자이자, 삶의 주인공인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소설 속 작가인 ‘나’는 자신이 창조한 이야기 속 주인공 ‘번각’과 나란히 걸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쓰는 일이 과연 어떠한 의미와 효력을 가지는지 골몰한다. 그러다가 ‘동네 도서관’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독자인 인물, 혹은 미래에 자신의 독자가 될 수도 있는 인물들과 만나고 얽히며 ‘쓰는 일’의 의미는 ‘읽는 자’에게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욕망은 방향일 뿐 해답은 아니다. 어떤 명예도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지고, 어떤 걸작도 읽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 소설이 도달하는 결론은 ‘독자’라는 존재다.
이를 환기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글쓰기의 실패, 한계를 작품 안에 솔직하게 노출시키며 쓰는 행위의 이유는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음을 고백한다. 또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이들 역시 서로의 약점과 상처를 받아들임으로써 화합과 연대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다른 시대와 공간에 존재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읽고 이어받으며 물리적 제약을 초월해 연결된다. 소설은 이를 통해 읽는 이들의 진정한 역할과 순기능을 다시 한번 되새겨 주며, 독자 스스로가 수많은 문학가에게 창작의 영감이자 이유가 되는 연결의 순간을 선사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단절된 듯 살아가는 오늘의 사회에서, 『우리동네 도서관』은 서로의 삶을 기꺼이 읽어내길 택하는 타인, 즉 ‘독자’라는 필수적 존재를 확인하는 여정이다.

숲 너머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돼지도, 말도 아닌 처음 듣는 소리였다. 번각이 고개 돌려 올려다보니, 하늘로 뻗은 소나무 위로 짐승의 머리가 둥둥 뜬 채로 지나갔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보았던 짐승이었다. 번각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 불현듯 눈앞에 안개가 드리워지며 길이 사라졌지? 멋진 아이디어가 상수인 줄 알고 방정식에 대입했는데, 변수였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고 있지?
목덜미 옆에서 느물거리듯 속삭이는 소리였다.
- 왜 그런지 알아? 없는 걸 억지로 만들어 내려니까 머리가 아픈 거야. 네가 쓰려는 이야기가 말이 안 되는 것을 알고, 뇌가 먼저 저항하는 중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