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그리고 세 차례의 전미도서상 수상을 석권하며 현대 미국 문학의 거대한 이정표가 된 솔 벨로. 그의 50여 년에 이르는 문학 여정과 정수를 한데 모은 자선 소설집 『솔 벨로』(전 2권)가 마침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2, 43권으로 독자들을 찾아온다.
그동안 국내에서 솔 벨로는 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위주로 소개되었으나, 그의 문학적 진가는 중단편의 응축된 형식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단일한 주제를 따라 절제된 구성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단편과 달리, 벨로의 단편은 인물의 내면과 사유의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전개되는 것이 특징으로, 철학적 사색이나 사회 비평, 농담, 기억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마치 ‘지적으로 압축된 장편’을 읽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로 그의 단편 가운데 상당수가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번에 출간된 세계문학 단편선 『솔 벨로』는 작가가 반세기 동안 치열하게 써 내려온 대표 중단편을 빈틈없이 집대성한 결과물로, ‘솔 벨로’라는 거대한 문학적 우주를 온전히 조망하게 한다. 앞서 발표한 세 권의 단편집 『모즈비의 회고록 外』(1968),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 外』(1984),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1991)에서 초기작 2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포함되었을뿐더러 마지막으로 집필한 1995년작 「세인트로렌스 강가에서」까지 실려 솔 벨로 단편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사 리뷰
★노벨문학상 수상★ ★퓰리처상 수상★ ★전미도서상 3회 수상★
가장 세속적인 인간을 가장 고결한 지성으로 껴안은
현대 미국 문학의 보물,
솔 벨로 자선 중단편집 국내 최초 출간!
“나는 현대 산문의 모든 기준을 그의 문장으로 삼았다” _제임스 우드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그리고 세 차례의 전미도서상 수상을 석권하며 현대 미국 문학의 거대한 이정표가 된 솔 벨로. 그의 50여 년에 이르는 문학 여정과 정수를 한데 모은 자선 소설집 『솔 벨로』(전 2권)가 마침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2, 43권으로 독자들을 찾아온다. 그동안 국내에서 솔 벨로는 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위주로 소개되었으나, 그의 문학적 진가는 중단편의 응축된 형식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단일한 주제를 따라 절제된 구성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단편과 달리, 벨로의 단편은 인물의 내면과 사유의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전개되는 것이 특징으로, 철학적 사색이나 사회 비평, 농담, 기억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마치 ‘지적으로 압축된 장편’을 읽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로 그의 단편 가운데 상당수가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번에 출간된 세계문학 단편선 『솔 벨로』는 작가가 반세기 동안 치열하게 써 내려온 대표 중단편을 빈틈없이 집대성한 결과물로, ‘솔 벨로’라는 거대한 문학적 우주를 온전히 조망하게 한다. 앞서 발표한 세 권의 단편집 『모즈비의 회고록 外』(1968),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 外』(1984),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1991)에서 초기작 2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포함되었을뿐더러 마지막으로 집필한 1995년작 「세인트로렌스 강가에서」까지 실려 솔 벨로 단편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1년부터 1995년까지 발표순으로 수록된 총 13편의 작품은 시카고의 거리를 누비던 청년기의 날카로운 감각이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깊은 성찰로 익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거대 도시의 소음과 역사적 격동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미국 이민자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의 궤적과 현대 지식인의 깊은 정신적 불안, 나아가 노년과 죽음, 사랑과 상실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비극을 남김없이 아우른다.
2001년 미국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는 “포크너가 천둥이라면 벨로는 번개다”라 평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순간적으로 명징하게” 비추는 그의 문체를 극찬했고, 《커커스리뷰》 또한 “미국 최고의 소설가가 남긴 영구 보존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외에도 “응축된 문장의 선명함과 사유의 깊이라는 점에서 경이로운 선집” “최고의 이야기꾼이 빚어낸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 성취” 등의 연이은 호평이 이어졌다. 이처럼 『솔 벨로』는 단순한 단편집을 넘어 20세기 인간 정신의 연대기이자 미국 문학이 도달한 눈부신 성취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지성과 속물성의 기묘한 공존:
고결한 정신 이면에 숨겨진 현대인의 결핍과 고독에 관하여
솔 벨로는 1915년 캐나다 퀘벡주의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시카고로 이주했으며, 인류학과 사회학, 영문학을 전공한 후 여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인류학과 문학을 강의했다. 유대인이라는 민족성과 다양한 언어 환경, 급격하게 변화해가던 20세기 미국 사회,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예술가 공동체는 벨로의 작품세계 전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민 경험과 정체성, 도시성, 지적 자기의식, 가족 갈등 등을 미국 현대 문학의 핵심 주제로 끌어올린 데는 개인적 경험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도 화자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대개 유대인이자 미국인이며, 부유하거나 유명한 지식인 남성이다. 일상적으로 철학·예술·정치·역사적 주제를 떠올리고 다양한 외국어와 속어를 섞어 농담을 즐기지만,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가족 내에 문제가 있거나 과거에 사로잡혀 지내거나 고독에 빠져 있고, 진지하게 고민하는데도 상황은 종종 희극으로 치닫는다. 벨로는 이들을 통해 지성을 찬양하면서도 동시에 가차 없이 조롱하는데, 우아한 문체로 생생하게 빚어진 이 인물들은 기이하면서도 절묘하게 현실적이다.
가령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는 이러한 거장의 인간 탐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화자인 해리는 현란한 독설과 통제되지 않는 ‘말의 과잉’으로 주변의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음악학자다.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내지만, 그 수다스러운 참회록의 이면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지독한 고독과 결핍이 숨어 있다. 벨로는 지식인의 화려한 달변을 찬양하는 듯하다가도, 그것이 파멸을 부르는 순간을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게 폭로하며 독자에게 지적 쾌감과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지성의 허위의식과 실존적 불안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다채롭게 변주된다. 「오늘 하루 어땠나요?」에서는 세계적 석학인 빅터 울피와 그의 내연녀인 카트리나의 관계를 통해 학문적 고결함 뒤에 감춰진 인간의 속물성과 허영을 들춰낸다.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논하는 빅터 울피는 연인과의 관계에서조차 지적 권위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지 못하고, 지적 세계로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카트리나 역시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폭설로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심리전은 고상한 학문적 성취 뒤에 숨은 인간의 가식적인 초상을 뼈아픈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삶의 가치는 성공이 아니라 품위에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섬세한 분석
20세기 후반의 수십 년을 다룬 이 단편집에는 전후의 혼란 속에서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역동적인 국가이자 인종과 문화의 혼성 공간으로서 미국 사회가 묘사되어 있다. 이민자들의 나라,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교, 범죄와 갈등으로 얼룩진 도시, 물질주의와 소비문화의 확산 속에서 피상적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 확고해진 냉전 체제, 기존의 가치가 해체되는 이 시기가 작품 곳곳에서 다양한 각도로 조명된다.
이런 양상은 작품 속에서 대표적으로 가족이나 친척 간 갈등으로 나타난다. 가부장적이었던 유대인 대가족은 미국 사회에 동화되는 정도에 따라 극심한 세대 갈등을 겪고, 끈끈한 유대를 잃고 흩어져서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는가 하면,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모순이 공존한다.
「사촌들」은 전통적 유대가 해체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지독하리만치 강한 결속을 요구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초상을 그린다. 폭력조직의 일을 봐주다 수감된 사촌을 위해 탄원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주인공의 딜레마는 세속화된 미국 사회에서도 결코 끊어낼 수 없는 혈연의 사슬을 질문한다. 이러한 혈연의 애증은 「은접시」에서 정점을 찍는다. 우디에게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 자신을 아껴준 은인의 집에서 은접시를 훔치던 아버지를 막아서며 처절한 육탄전을 벌인 기억이 있다. 이 강렬한 기억은 세월이 흘러 예순이 넘은 우디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병실로 이어지는데, 죽음이라는 절대적 단절 앞에서도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아들의 먹먹한 연민은 가족이라는 운명의 복잡성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또한 벨로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현대 사회에서 점차 자리를 잃어가는 이념의 문제를 논하기도 하고, 전위적인 탐색을 시도하는 당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의견도 피력한다. 작품 곳곳에는 20세기 후반을 뒤흔든 정치가와 문화예술계의 거장이 실명으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이는 소설적 허구를 넘어 당대 지식인 사회의 지형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내는 효과를 낳는다.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시대의 명암을 가차 없이 파헤치면서도 특유의 냉소와 위트로 사회를 간파하는 솔 벨로의 통찰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보여주었다는 노벨문학상 수상 사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삶은 곧 기억이다”
: 죽음을 앞두고도 냉소와 허무에 지지 않는 정신
솔 벨로는 61세인 197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에도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는데, 왕성한 노년은 그의 작품 전반에서 중요한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다. 여러 단편에서 주요 인물은 노인이고, 친밀한 이들의 죽음을 여러 차례 목도했거나 본인이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긴 처지다. 은퇴 이후 관계가 축소되고 고립된 처지에 놓인 이들은 육체는 비록 쇠약해졌음에도 정신은 여전히 건재하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남을지를 고뇌하며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찾으려 하고,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욕망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이러한 노년의 실존적 고투는 작가가 시간을 다루는 미학적 장치와 맞물릴 때 한층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솔 벨로는 기억의 서사를 통해 시간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압축하고 확장하는데, 일례로 노년의 화자가 성인이 된 외아들에게 들려주는 회고담 형식의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에서는 대공황 시절 어머니의 임종을 둘러싼 ‘단 하루’가 고스란히 담기는 반면, 홀로코스트의 상흔과 망각을 다룬 「벨라로사 커넥션」에서는 ‘수십 년의 생애’가 몇 개의 굵직한 에피소드와 장면들로 요약된다. 이처럼 현재의 서사 속으로 불쑥 틈입하는 회상들은 비록 이미 결말이 정해진 과거의 편린이라 하더라도, 노년의 주인공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되돌아볼 때 비로소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솔 벨로가 노년에 이르러 치열하게 복원해낸 이 기억의 서사들은 단순한 과거의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의 소음과 죽음이라는 절대적 허무에 맞서 인간이 지닌 고유의 정신적 빛과 존엄성을 끝끝내 증명해내려는 거장의 필사적인 분투이다. 늙어감과 소멸의 과정을 이토록 품위 있고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 그의 후기작들은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끝내 기억하고 붙잡아야 할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엄숙하게 묻고 있다.
■ 수록 작품 소개
「그린 씨를 찾아서」(1951)
구호소에 일자리를 얻어 처음 출근한 날, 그리브는 익숙하지 않은 시카고의 흑인 구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의 임무는 구호용 수표를 전달하는 것인데, 명단에 적힌 주소지를 찾아가보니 그런 사람은 없다고?
「노란 집 물려주기」(1957)
나이 든 해티는 호숫가의 근사한 집에서 혼자서도 명랑하게 살아왔지만, 자초한 사고로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할까? 오랫동안 왕래 없던 피붙이? 인근 마을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자 지내는 늙은이? 어쩌면 이웃의 마음씨 좋은 부부가 그녀를 구원해주지 않을까?
「옛날 방식」(1967)
브라운 박사는 미묘한 관계가 된 사촌들을 떠올린다. 독실하고 부유한 맏이 아이작은 막냇동생인 티나와 사이가 틀어져 몇 년째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내는데, 티나의 암 투병 소식이 전해진다.
「모즈비의 회고록」(1968)
국제 정치사의 굵직한 장면들에 관여한 화려한 이력의 모즈비 박사는 딱딱한 회고록에 유머를 가미하기 위해 러스트가르텐이라는 인물을 기억에서 불러낸다. 한때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던 그는 냉전 시기에 접어들면서 큰돈을 벌기 위해 애쓰지만 좀처럼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제틀랜드: 성격증거에 따라」(1974)
일찍이 세상을 책으로 배운 천재 소년 제틀랜드. 원대한 통찰을 품고 있는 지식인-보헤미안으로서 그는 고지식한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은접시」(1978)
건실한 사업가이자 온 가족을 돌보는 착한 사람이지만 운을 시험하며 대마초를 밀반입하기도 하는 우디가 최근 작고한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고한다. 우디가 열네 살 때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던 아버지는 신학생이 된 우디를 오랜만에 찾아와 급하게 돈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1982)
빚을 지고 캐나다로 도피했다가 본국송환을 앞둔 유명인사 쇼머트는 자신이 수십 년 전에 한 말실수로 한 여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어 사과하는 편지를 쓴다. 하지만 그의 실언은 그때만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고질적이었는데….
「오늘 하루 어땠나요?」(1984)
늙고 오만한 세계적 학자 빅터 울피, 그리고 지적 세계로의 신분 상승을 꿈꾸는 그의 젊은 내연녀 카트리나. 폭설로 모든 발이 묶어버린 공항에서, 세속적이고 생생한 삶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카트리나는 빅터를 향한 변함없는 존경의 시선을 보내지만, 늙고 쇠약해진 빅터에게 카트리나는 스러져가는 육체의 한계를 잊게 하는 관능의 거울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똑같이 활기차고 다부지지만 조금은 멍한 상태로, 그녀는 짧은 치마와 옷깃에 양털이 달린 지저분한 항공점퍼를 벗어던지고, 대신 거들과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하이힐
을 신고 서면 살찌고 나이 든 몸이 출렁였다. 그녀는 렘브란트가 쓴 것 같은 갈색 스코틀랜드 모자를 쓰고 싸구려 잡화점에서 산 눈알처럼 생긴 브로치를 가운데 달았다. 립스틱을 직선으로 한 번 긋고 입술 윗부분은 흐릿하게 내버려두었다. 포탑처럼 생긴 자신의 차 운전석에 앉아 능숙해 보이지만 위험하게 과속하며, 산이 많은 65킬로미터의 사막 지대를 가로질러 냉동 고기파이와 위스키를 사러 갔다. 빨래방과 미용실에 들른 뒤, 알링턴에서 두 잔의 마티니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종종 빈민가 근처 밀러 가에 있는 메리언 내벗의 실버마인 호텔에 가서 옛 친구들, 그녀와 마찬가지로 이혼 후 서부에 정착한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이제 도박은 하지 않았고, 영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5시가 되면 같은 속도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는데, 차분하게 운전했지만, 담배 연기 때문에 가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줄곧 물고 있는 담배의 연기 때문에 눈물이 고였다. _「노란 집 물려주기」
“형 병문안 허락해야 해.” 머트가 말했다.
“내가 죽어가고 있으니까?”
머트는 무덤덤하고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대답을 생각하는 그의 눈에 잠시 공허한 빛이 스쳤다. “낫는 사람들도 있어.”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무심하게 말했다. “이번엔 아니야.” 그녀의 얼굴과 배 윗부분은 이미 수척했다. 발목은 부었다. 다른 환자들에게서 그런 증상들을 보았고, 그게 무슨 신호인지도 알고 있었다.
“형이 매일 전화한단 말이야.” 머트가 말했다.
그녀의 손톱에는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짙은 빨강, 거의 갈색에 가까웠다. 결핍과 욕망이 만들어낸 뒤틀린 취향 중 하나였다. 어머니 손에서 빼낸 반지는 이제 손가락에 헐거웠다. 그리고 잠시 몸이 편해진 듯 티나는 침대 등받이를 세운 다음,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병실용 외투의 레이스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럼 아이작 오빠한테 이렇게 전해줘, 머트 오빠. 만나기는 할 거야, 그래, 대신 돈을 줘야 해.”
“돈?”
“나한테 이만 달러 주면 만날게.”
“티나, 그건 옳지 않아.”
“왜! 내 딸 줄 거야. 걔한테 필요한 돈이야.”
“아니, 애한테 그 정도 돈은 필요 없어.” 그는 로즈 숙모가 남겨준 유산을 알고 있었다. “돈은 충분해. 너도 알잖아.”
“아이작 오빠가 정말 병원에 오고 싶다면, 그게 입장료야.” 그녀가 말했다. “오빠가 우리한테서 뺏어간 돈에 비하면 푼돈이야.” _「옛날 방식」
그는 먼저 이름을 하나 떠올렸다. 러스트가르텐. 그래, 그게 그가 원하는 사람이었다. 하이멘 러스트가르텐, 뉴저지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전 마르크스주의자. 뉴어크 출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신발 상인이었는데, 이단적이고 광적인 모임이나 볼셰비키 모임에 닥치는 대로 속해 있었다. 그는 레닌주의자였다가, 트로츠키주의자였다가, 휴고 욀러 추종자였다가, 최종적으로는 정치를 포기하고 화가, 추상화가가 된 이탈리아인 살레메의 추종자가 되었다. 러스트가르텐 본인도 정치를 포기했다. 이제 그는 사업에서 성공해서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자본론』이나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파고들며 보냈던 밤들이 사업에서 자신에게 득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호텔에 묵었다. 처음엔 그와 그의 아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금세 알게 되었다. 암시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 전후의 유럽은 그랬다. 난민들, 모험가들, 미군 병사들. 심지어 폐광 백작까지. 유럽은 여전히 전쟁에서 받은 타격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새로운 정부는 불확실하고 허약했다.
정부의 권위를 존중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 병사들이 앞장섰다. 대담한 사업계획들. 기계들, 공장 전체, 훔친 물건이나 보물을 배에 실어 고국으로 보냈다. 목재업에 뛰어든 미군 대령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를 벌목해 위스콘신으로 보냈다. 그리고 당연히 나치는 집단수용소에서 약탈한 물건을 숨기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호수에 보석을 가라앉혀두었다. 예술품을 숨겼다. 처형장에서 뽑은 금니들은 녹여서 금괴로 만든 다음 벽돌처럼 집의 벽에 쌓아 올렸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부가 쏟아질 예정이었고, 러스트가르텐도 한몫 잡으려 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능력이 없었다. _「모즈비의 회고록」
작가 소개
지은이 : 솔 벨로
1915년 캐나다 퀘벡주 라신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부부의 사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아홉 살 때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주했다. 시카고대학교, 노스웨스턴대학교, 위스콘신대학교 등에서 인류학과 사회학, 영문학을 수학한 뒤 여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단에 섰다. 1941년 첫 단편 「두 개의 아침 독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그는 평생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유려한 문체와 날카로운 지성으로 파헤치며 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 『오기 마치의 모험』(1953), 『허조그』(1964), 『샘러 씨의 행성』(1970)으로 전미도서상을 세 차례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험볼트의 선물』(1975)로 퓰리처상을, 1976년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인정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위대한 문학적 위상은 선 굵은 장편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격정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중단편 소설의 완벽한 성취에서 비롯되었다. 평론가들로부터 “벨로의 단편 하나가 다른 작가의 장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정서적 타격감을 선사한다”는 극찬을 받을 만큼, 그는 짧은 분량 안에서 인간 본성의 지독한 모순을 압축해 보여주는 데 독보적이었다. 뉴욕에서의 단 하루를 무대로 현대인의 파산과 영적 구원을 그린 중편 『오늘을 잡아라』(1956)로 미국 중편 소설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지식인의 냉소와 고독을 위트 있게 다룬 『모스비의 회고록 외』(1968)을 통해 단편의 거장다운 완숙미를 증명했으며, 1984년에는 인간의 소통 불가능성을 날카로운 유머로 파헤친 명작 단편집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 외』를 출간하며 문단에 거대한 지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현대 남녀의 성적 역학과 감정의 과잉을 풍자한 『어떤 도둑질』(1989),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다룬 『벨라로사 커넥션』(1989)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후기 단편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오헨리상, 말라파르테문학상, 세인트루이스문학상과 더불어 단편소설 부문의 권위 있는 펜/맬러머드상을 수상했고, 국가예술훈장과 전미도서재단 공로훈장 등을 수훈했다. 이처럼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미국 문학의 최전선을 지키며 독보적인 족적을 남긴 그는 2005년 4월,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라인의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2001년 『솔 벨로 단편집』이 출간되었을 때 뉴욕타임스는 “포크너가 천둥이라면 벨로는 번개”라며 사물을 순간적으로 명징하게 시각화하는 그의 날카로운 단편 스타일을 극찬했다. 거장의 60년 문학 인생이 담긴 이 책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심연을 비추는 눈부신 유산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