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고독에서 시작해 사랑의 찬란함과 붕괴를 지나, 세계와의 충돌 끝에 공존의 태도로 나아가는 한 청춘의 성장 기록. 《찻잎은 가라앉지 않는다》는 네 개의 장을 통해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통과하려는 한음의 의지를 그려낸다.
낯선 타국에서의 고독, 연애의 상실과 자각, 경쟁사회 안에서 흔들리는 청년의 윤리, 그리고 마침내 대결이 아닌 공존을 선택하는 성숙의 시선까지. 이 시집은 묻는다. “세상이 이렇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대답 대신 담담하게 보여준다, 뒤집힌 물결 속에서도 끝내 떠오르는 찻잎처럼.
출판사 리뷰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위하여 – 시집 《찻잎은 가라앉지 않는다》의 시 세계
※ 들어가며: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
한음 시집 《찻잎은 가라앉지 않는다》를 펼치면, 독자 여러분들은 네 개의 챕터를 만나게 된다. 각 챕터는 서로 다른 풍경과 정서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따로따로 흩어진 조각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성장 서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고독에서 출발해, 사랑의 붕괴를 지나 세계와의 충돌을 겪고, 다시 세계와 공존하면서 삶 전체를 조망하기까지. 독자는 네 개의 챕터를 각각 하나의 작은 시집처럼 읽으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어떻게 한음이라는 시적 자아의 성장 드라마로 이어지는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I. 호우시절(好雨時節)
“고독의 자장(磁場) 안에서 태어난 시적 자아의 기원”
첫 장을 이루는 모든 시편은 중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서로 다른 풍경을 다루면서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나는 누구이며, 왜 시를 쓰는가?”
<이별>에서 시작된 거부할 수 없는(그러나 이 또한 자기 선택의 결과인) ‘끌려가는 자아’, <정장의 무게>에서 드러나는 ‘첫 직장생활의 무게에 허덕이는 청춘’, 녹록지 않은 직장에서 <종루 연가>라는 순간적 탈출과 다짐, 그리고 <산>, <돌은>, <가을비>, <낙엽의 위로>, <월아천> 등 자연을 다룬 시편에서 보이는 자기 내부의 통찰과 고독으로부터의 극복 의지는 모두 이 질문을 향한 서로 다른 답변이다.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거다, 끝과 시작을 반복하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순응과 반항의 경계에서/ 넘어지더라도 무너지지는 않는 미소를/ 나 여기 흘려 마르지 않는 샘물 되게 한다” (<월아천> 中)
이 장의 작품들은 성벽 위를 걷는 고독, 겨울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바오지 역의 플랫폼 같은 ‘외부 세계’의 장면들을 빌려 한음의 내부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외로움은 한음의 기원이고 타국에서의 시간은 자아를 가다듬는 모루이며, 자유로운 개인에서 조직의 부품이 되어 가며 쓸모를 평가받는 청년의 씁쓸함은 시적 감각을 정제시키는 뜨거운 용광로다. 이 첫 장의 중심 기둥은 분명하다.
“버티되, 무너지지 않는 존재.”
그 정점이 바로 표제 시 <찻잎은 가라앉지 않는다>이다. 세찬 물결, 폭풍, 잔의 혼탁함 속에서도 푸른빛으로 버티는 찻잎은, 한음이 이후 모든 장에서 보여주는 미학의 씨앗이다. 2장, 3장, 4장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가 바로 여기서 처음 완성된다. Ⅰ장은 아직 어둡고 흔들리지만 이미 ‘빛의 기미’를 지닌 장이다. 감정의 혼탁과 청춘의 상처를 지나며, 시적 자아 한음은 첫 번째 근육: 버팀의 근육을 얻는다.
Ⅱ. 그 겨울의 끝
“사랑의 붕괴와 회복을 통해 자아의 심연을 직면하는 장”
두 번째 장은 네 개의 장 중 정서적 밀도가 가장 높은 구간이다. 모든 시가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사랑의 붕괴 → 감정의 파편화 → 자기 발견.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관념을 정립하고 사랑하는 행위의 주체인 자신의 정체를 깨뜨려 보는 유리창에 가깝다. <헤어진 다음 날>, <백일홍 지는 날에>, <풍등>, <오늘의 날씨 맑음> 등은 애틋함·상실·기억의 잔향을 다루지만, 이별의 표면을 넘어 한음의 감정 구조를 해부하는 과정에 가깝다.
설렘의 두근거림이 번지던 순간에서 출발(<Yellow>)해, 따스한 햇살과 음악, 장난기 어린 농담 속에서 당신이라는 걸작을 진지하게 창조하는 한음의 사랑은 삶을 환하게 비추는 경험으로 그려진다(<94년 生, 경성풍의 사랑 시>). 그러나 오랜 시간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서로가 처한 환경과 삶의 제약으로 인해 그 균열이 커지면서 이별로 끝이 난다.
타인과 완전히 같을 수 없고, 그래서 타인과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용하고 강력하게 감정의 표면을 갈라놓는다. 사랑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상대의 부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적나라한 고립된 감정이다(<절해고도의 노래>). 그러나 한음은 이별의 상태를 치기 어린 감정으로 두지 않는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그대가 아무것도 아닌 나를 빛내고 키워준 것처럼/ 텅 빈 모래벌판에서, 쇳물같은 울음으로/ 나는 마침내 강철로 된 배를 띄울 겁니다” (<절해고도의 노래> 中)
이 문장은 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떠나감(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상실을 자신의 성장 으로 바꾸려는 데에서 나오는 진정성이다. 이 장의 모든 시는 결국 한 지점으로 모인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끝이 시인을 데려간 곳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문턱이다. Ⅱ장은 한음이 ‘감정의 나락’을 지나며 두 번째 근육: 자기 인식의 근육을 얻는 장이다. 이별이 끝이 아니라 ‘성찰의 출발점’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Ⅲ. 굳세어라, 청춘이여
“개인의 고통에서 사회적 감각으로 확장되는 청춘의 각성기”
세 번째 장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과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기에는 자아의 윤리, 사회적 시선, 청춘의 정치학이 들어선다. 한음의 시적 자아는 이 장에서 비로소 ‘내 마음’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의 자기 처벌, <변명>이 보여주는 순종·불순종의 역설, <간극>의 사회적 거리와 오해의 문제, <멜랑콜리>와 <녹턴>의 인간·사회·욕망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불완전한 자신에 대한 고백, <광인일기>의 자기 무력감과 존재적 회의, 그리고 산문 <절망의 끝에서 피는 꽃>의 자기 고백과 깨달음, 나아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다짐까지.
이 장은 개인의 상처를 넘어 청춘 전체의 우울, 시대의 부조리, 관계의 어려움, 사회의 폭력성을 응시한다. 그 가운데, <면접>은 이 장의 정서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시다.
“똑같은 흑백의 건반인데/ 제각각 다른 목소리들을 내고/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 선택을 하는 면접관도, 선택을 받는 우리도/ 그 누구의 잘못도 없어 원망은 하늘을 향한다” (<면접> 中)
면접이라는 하나의 사건 속에 ‘젊은 세대가 어떻게 평가받고, 어떻게 자신을 포장하며, 또 어떻게 소진되어 가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응시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이 장의 시들은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묻는다.
“세상이 이렇더라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음은 이 장에서 비로소 ‘개인의 아픔(Ⅰ·Ⅱ)’ → ‘사회적 책임과 감각(Ⅲ)’으로 이동한다. 즉, 슬픔과 상처만을 이야기하던 화자에서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인으로 확장된다. Ⅲ장은 한음이 세 번째 근육: 세계와 맞서는 근육을 얻는 장이다. 고통을 사회적 언어로 바꾸고, 개인의 슬픔을 시대의 윤리로 번역해 낸다.
Ⅳ. 끝나지 않은 이야기
“대결의 윤리에서 공존의 윤리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기”
네 번째 장에서 한음의 시적 자아는 더 이상 세계와 충돌하거나 자기 결함을 심판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삶의 여러 단면을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태도로 조용히 이동한다.
<두 자아의 대면>은 흔들리던 과거의 자아와 성찰적 현재가 마주 서는 순간을 보여주며, <강남 블루스>, <고덕 블루스>, <Deal>은 도시·자본·청년의 소모성을 비난하기보다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시선을 애틋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또한 <자각>, <어머니의 사진>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신체의 변화가 더 이상 상실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수용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식이다. 3장에서 화자는 타인을 비판하면서도 이해하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죄의식, 윤리적 강박에 시달렸다면, 4장에서는 ‘존중하고 경청하며 적절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 즉 공존의 사랑으로 이해한다. 이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받아들이는 성숙의 징표다.
이 장의 중심에는 <청춘>이 있다. 청춘이란 흔들리지 않는 시절이 아니라 흔들림을 끌어안고서 다시 걸어 나가려는 의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산문 <그래도 강은 흐른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는 와중에 세계의 모순과 자기 내부의 결함을 충분히 경험한 뒤 비로소 도달하는 조용한 확신이다.
“날아올라라, 추락할 게 없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수놓아라,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을/ 그리고 걸어가자, 우리에게 몰아칠 모든 것들을 향해!” (<청춘> 中)
Ⅳ장은 한음이 네 번째 근육: 삶을 끌어안는 근육을 얻는 장이다. 대결이 아닌 공존, 정답이 아닌 흐름 속에 자리를 잡으며 그는 마침내 ‘흔들리는 자아’에서 ‘흐르는 자아’로 나아간다.
※ 나오며: “가라앉지 않음의 문학: 찻잎의 미학, 청춘의 윤리학”
이처럼 《찻잎은 가라앉지 않는다》는 네 개의 장을 통해 한음이라는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서사적 시집이다.
Ⅰ장은 고독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계절, Ⅱ장은 감정의 심연을 직면하는 시간, Ⅲ장은 세계 와의 충돌 속에서 윤리를 찾는 여정, Ⅳ장은 삶 전체를 다시 꿰어 의미화하는 성숙의 문턱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문장은 결국 하나다.
“그러나 찻잎은 가라앉지 않는다.”
삶이 흔들려도, 마음이 뒤집혀도, 관계가 무너져도, 세상이 가혹해도… 한음은 끝내 가라앉지 않는다. 흔들리고, 물결 속에서 잠기고, 때로는 바닥에 부딪혀도 그것이 곧 새로운 빛을 품는 과정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시로 승화시킨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 여러분 역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삶이란 결국, 가라앉지 않으려 애쓰는 존재들의 끊임없는 푸르름이라는 것을.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음
필명 한음은 ‘한을 읊다’,혹은 ‘하나된 목소리’를 뜻한다.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잘 모른다.감정도, 세상도, 사람도, 자연도.그래서 쓴다. 계속해서 쓰고 읊는다.새벽의 침묵 속에서 사랑하는 이름들을 떠올리며,그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