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손의 기억
숨소리마저, 금이 간 유리 위를 딛듯 위태로운 중환자실. 창가 4번 침대에 당신의 어머니가 누워있다. 어머니 손을 잡으려다 당신은 멈칫한다. 종아리를 치던 손 위로 열에 들뜬 당신을 업고 병원까지 달리던 손이 겹친다. 그 손을 한 번도 먼저 잡아본 적이 없다.
“어머니…”
조심스레 불러보지만, 어머니는 이미 대답할 기력을 잃었고 당신은 대답을 들을 기회를 놓쳤다. 늘 “나는 괜찮아”라며 자신을 다독이던 어머니가 그렇게 이승을 떠나고 있었다. 당신은 삼도천을 건너는 뱃길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어머니 손을 감싸 쥐었다. 식어가는 온기를 당신의 체온이 아프게 채웠다.
“괜찮아요, 이제 다 괜찮아요…”
그때부터였던가. 당신의 삶이 어머니의 손을 떠나보내는 아픔으로 얼룩진 것이.
여름 내내 더위와 전쟁 중이다. 7월부터 이어진 열대야 때문에 밤마다 잠까지 설친다. TV를 켜도 이상기온이니, 고속도로 정체가 어떠니 떠드는 소리뿐이라 어디라도 훌쩍 떠나 볼까 하다가도 막상 더운 바람 한 줄기만 스쳐도 금세 의욕이 꺾인다. 집 안에만 틀어박힌 지 벌써 두 달,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은 더부룩하고, 기분은 땀 절은 빨래처럼 눅눅하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생수 한 병을 다 마신 당신은 휴대전화를 켜 가족 대화방을 연다.
― 나 이러다 영혼이 증발하겠어. 계곡에라도 데려가 줘.
아이들 챙기며 직장 다니느라 바쁜 세 자식에게 이런 말 하는 건, 어미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속을 털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 투정을 부려봤다. 그런데 뜻밖에 늘 바쁘다며 톡 확인도 안 하던 막내딸 수지가 답을 띄웠다.
― 이번 주말에 같이 가요. 수박 한 통 사 가지고.
‘얘가 웬일이래?’ 당신은 고개를 갸웃하다 얼른 손가락을 움직인다.
― 그런 데가 있긴 해? 그리고 너는 바쁘잖아.
잠시 후, 수지가 강한 어퍼컷을 날린다.
― 우리 김 여사가 죽겠다는데, 구급차 타고라도 가야지 어쩌겠어요. 후후.
그 말에 당신은 피식 웃음이 터진다. 화면 속 글자 몇 줄이 방금 마신 물 한 병보다 더 시원하게 가슴을 적신다. 수지 말로는 양평에서 청평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를 달리다 용문산 남쪽 능선이 보이는 용천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십 분쯤 들어가면 당신이 좋아할 만한 계곡이 있다고 한다. 그곳은 폭이 넓고 물도 많아 곳곳에 크고 작은 소(沼)가 있고, 상류에는 고려 말 고승 원증국사의 사리탑이 있는 고찰 ‘사나사(舍那寺)’도 있다며 간 김에 그곳도 들러보잔다.
― 엄마 핑계로 나도 좀 쉬려고요. 토요일 아홉 시, 기사 출동합니다.
다른 두 자식은 여전히 톡을 씹는데, 그래도 막내가 어미 체면을 살려준다. 수지는 물이 철철 흐르는 계곡과 절 풍경을 찍은 영상까지 올려준다. 고즈넉한 사찰 풍경, 그 옆으로 쏟아지는 물소리에 당신의 입이 절로 벌어진다. 당신은 수지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오케이’ 이모티콘을 띄우고 한 줄 멘트까지 날린다.
― 좋아. 수박은 내가 사 가지.
작가 소개
지은이 : 안중익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며 번역서와 불교 서적, 큰스님들의 저서를 출간해오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시와 소설 공부를 시작, 2020년 《한국소설》 신인상에 단편소설 「반야용선」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함. 차기작으로 쓴 단편 「문턱」이 KBS라디오 문학관 드라마로 선정되었고, 그 후 「문턱」을 극본으로 각색하여 제7회 <늘 푸른 연극제>에 참여 <겨울배롱나무 꽃피는 날>로 국립정동 세실극장에서 공연. 2025년 광주, 영광, 인제, 양구에서 재공연 됨. 소설집 『반야용선』, 『손의 기억』희곡집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 날』공저의 동화집이 있음.
목차
작가의 말 015
서시序詩 019
런던의 두 퀸 014
친구 밥상 046
쉿, 비밀이야 074
워리 비 해피 100
손의 기억 124
아스팔트 위의 민달팽이 148
그들의 이소(離巢) 168
무대가 열리고 불이 들어오면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