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멈추지 않는 몸들의 기록, 외국인투자기업의 청산 통보에 맞선 209명의 노동자. 하루아침에 회사 청산과 해고를 통보받은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자본의 먹튀에 맞서 ‘함께 잘 살아가는 법’을 증명해냈다.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을 넘어, 투쟁이 어떻게 삶이 되고, 연대가 어떻게 뚜벅이재단이라는 사회적 고용기금 마련의 미래로 확장되었는지를 기록한다.
출판사 리뷰
“한국 노동운동 미시사의 소중한 성과”
공장은 문을 닫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았다
먹튀 자본에 맞선 언니들,
한국와이퍼 투쟁이 보여준 노동운동의 ‘다음’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와이퍼 생산 공장. 한국와이퍼는 1987년 일본 덴소 그룹의 100퍼센트 지분으로 세워진 외국인투자기업이었다. 전체 직원 320명 중 3분의 2가 여성 노동자, 50여 명은 사무직에, 260여 명은 생산직에 종사했다. 노동자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각각의 노동으로 와이퍼 공장을 터전 삼아 나름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랬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청산을 통보했다. 회사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해고와 청산을 정당화했지만, 그 적자는 처음부터 청산을 위한 기획 경영의 결과였다. 재무구조를 유심히 들여다본 노동자들은 한국와이퍼의 이윤이 모두 일본의 덴소 자본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일본 원청에 과도한 기술 로열티를 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청산 통보에 맞섰고, 약 400여 일의 투쟁이 이어졌다. 시위했고, 공장을 점거했고, 언론과 국회에 알렸고, 일본으로 달려갔다. 다른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지역 시민들이 연대했다. 안산 노동자 시민들에게 이 투쟁은 한 발짝 떨어진 노동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다가왔다. “내가 아는 언니, 누나”가 실직 위험에 처했다는 염려가 모여 힘이 되었다. 연대자들이 곁을 지켰고,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서로를 돌보며 계속해서 길을 찾았다.
청산 절차와 해고를 피할 수 없어지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위로금이 아닌 사회적 고용기금을 회사에 요구했다. 일방적 청산으로 노동자들이 생계 위험에 내몰리게 된 것은 물론이고 지역경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처사였다. 한국와이퍼 해고 노동자들의 ‘이후’에 지역 노동자들의 ‘이후’가 겹쳐졌다. 자기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나아가야 할 문제로 노동운동의 ‘다음’을 본 것이다. 그렇게 받아낸 사회적 고용기금은 노동자 공익재단 뚜벅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209명의 노동자가 끝까지,
‘함께 잘 남는 일’을 따라간 기록
책은 노조가 생기기 전, 여느 해처럼 통보식으로 이뤄지던 임금협상 설명회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올해 임금은 이만큼 오르게 됐다고 노측 위원이 발표하면 그 미미한 인상률에 시큰둥한 노동자들이 별다른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자리. 그런데 2008년 6월 입금협상 설명회에서 손 하나가 올라오더니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재무제표는 확인해보셨어요? 지금 이 임금인상 수준은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고, 회의는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지만 그 목소리는 노동자들의 마음에 남아 울림을 만들었다. 그해 말, 노측 위원장 선거에서 의외의 인물이 당선되었다. 뒤쪽에서 번쩍 손을 들고 질문했던 그이였다. 늘 나이 지긋하고 경력 많은 현장 관리자가 위원장이 되던 공장에서 최윤미의 당선은 일대 사건이었다.
처음으로 현장 여성 노동자가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게 된 순간, 한국와이퍼 투쟁기는 바로 그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1부는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노조 결성 10년 전부터 노조 되기 연습이 시작되었던 노동자들의 경험을 아우르며 본격적인 청산 해고 반대 투쟁의 시작과 과정, 종료까지를 세심히 기록한다. 그 속에는 투쟁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무수한 연대자들이 자리한다. 기록자 희음은 섬세한 시선으로 투쟁 전반을 살피고 정리하며 마치 한국와이퍼 공장 한복판에 있는 듯 생생한 서술을 이어간다.
투쟁의 장면들,
그 시간 속에서 웃는 얼굴들
1부와 2부 사이, 사진으로만 구성된 〈#장면들〉은 말 그대로 한국와이퍼 투쟁의 면면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부분이다. 1부의 투쟁기는 #장면들을 만나며 또렷한 색을 입고 독자의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에 담긴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마치 아는 사람의 얼굴처럼 곰곰 들여다보게 된다. 지난한 투쟁 속에서도 미소 짓고 있는 얼굴들에서 힘이 느껴진다. 〈#장면들〉은 투쟁 속 각각의 장면을 한눈에 조망하는 데도 의미가 있지만, 그저 이 노동자들의 얼굴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어쩌면 수많은 기사에서 흔하게 보아왔을 투쟁의 모습들이, 그 내막을 알고 나면 얼마나 가깝게 다가오는지 함께 느꼈으면 했다.
“사람이 배신할까봐 두려웠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언니들이 계셔가지고.”
1부 ‘투쟁과 연대와 돌봄의 역사’가 한국와이퍼 투쟁을 기록자의 시선에서 기록한 내용이라면, 2부 ‘목소리들’은 그 투쟁의 시간 속에 있었던 사람들 중 일부를 다시 지면으로 불러오는 부분이다. 희음은 조합원은 물론이고 이 투쟁에 연대했던 지역 시민 및 단체 활동가,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 지회장, 금속노조 경기지부 지부장, 변호사, 국회의원, 일본의 연대자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 인터뷰해 이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그 목소리들 속에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조금씩 각기 다른 의미로 자리 잡은 한국와이퍼 투쟁이 있다. 누군가에게 이 투쟁은 받은 사랑을 잊지 않는 보답의 시간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도 낯선 변화의 시간이었다. 청산을 막는 건 안 될 것 같았는데도 동료 노동자들을 믿고 묵묵히 투쟁 현장으로 나선 이가 있었고, 잠깐 돈 좀 벌려고 입사했다가 투쟁까지 단단히 얽히게 된 이도 있었다.
투쟁에 연대하고 참여한 이유와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목소리들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놀랍게도 ‘돌봄’인 듯하다. 각자가 선 자리에서 서로에게 행한 돌봄. 투쟁은 돌봄 없이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와이퍼 투쟁은 보여준다. 돌봄은 한국와이퍼 ‘언니’들의 투쟁이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은 힘이었고, 209명의 노동자가 마지막까지 흩어지지 않은 이유였으며, 다양한 이들이 결합하고 연대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청산 해고 이후의 ‘다음’을 보게 한 자리였다.
산업 전환과 외투자본의 철수 앞에서
노동자의 힘은 무엇일까?
한국에 들어올 때는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제도적 혜택을 이용하면서도, 떠날 때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지지 않은 채 사업을 청산하는 행태는 비단 한국와이퍼뿐만 아니라 한국산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등이 겪어온 문제들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제도적 규제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같은 문제들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청산과 해고의 범위를 더 확장한다면, 톨게이트 노동자가 사라졌듯 산업 전환 시대에 많은 노동자가 같은 문제를 맞닥뜨릴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기업별 노조만의 문제로 남겨둘 수 있을까? 노조를 만들 수조차 없는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만든 뚜벅이재단은 그러한 지점에서 구조적으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지역의 노동자를 연결하고, 산업 전환으로 해고에 맞닥뜨린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지원하고, 개인 노동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연결하는 일. 노조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연대의 장을 만드는 일. 이는 뚜벅이재단을 하나의 귀중한 사례로 기억해야 할 이유다.
한국와이퍼 투쟁은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제도적 규제의 마련을 촉구하는 동시에, 뚜벅이재단이라는 더 큰 연대의 자리를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준다. 이 책은 209명의 노동자가 서로를 돌보고 믿은 그 힘이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기록이다. 투쟁과 연대와 돌봄의 역사로서 한국와이퍼가 남긴,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갈 이야기가 많은 독자에게 닿길 희망한다.
한국와이퍼는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와이퍼 생산 공장이었다. 1987년, 일본 덴소 그룹의 투자로 세워진 곳이었다.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일하며 생활을 꾸렸다. 여성 노동자가 3분의 2가량이었고, 그중에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도맡은 이도 적지 않았다. 이들 일상의 리듬은 공장의 시간과 동료들의 시간에 전적으로 기대어 있었다. 공장은 노동자들의 삶을 아래위에서 감싸는 지붕이자 영토였다.
그랬던 공장이 2022년 7월에 청산을 통보했다. 노동자들은 고용안정협약을 근거로 청산 철회를 요구하며 장기간의 교섭과 투쟁에 나섰지만, 공장은 끝내 문을 닫았다. 2023년 8월이었다. 노동자들은 일하러 갈 곳을 잃었고, 자신의 이야기와 땀과 리듬이 오롯이 밴 장소 또한 잃었다. (들어가며)
외국인투자자본(이하 외투자본)은 책임을 산산조각 내고 이곳을 떴지만, 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흩어진 채로 두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은 그런 마음과 약속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는지, 그 마음과 약속이 어떤 시간과 기술과 애씀을 통해 실천되고 유지되는지를 기록한다. 공장은 사라져도 관계는 사라지지 않은 자리에서, 투쟁은 부당함에 거칠게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세우고 지키는 방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전한다. (들어가며)
한국와이퍼분회의 시간은 엮은 팔짱을 하나씩 차례로 늘려간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주의 깊게 듣는 귀가 있었고, 어려운 숫자와 법률을 풀어 설명하는 도처의 목소리가 있었다. 누군가는 기다렸고, 누군가는 돌아보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원래의 자리를 다만 믿고 지켰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 속에서 싸움은 점점 더 넓고 따뜻한 자리를 만들어갔다. 공장이 사라진 뒤에도 관계가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 이전의 시간 속에 체온 섞인 실천이 두껍게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부의 이야기는 노조가 생기기도 전의,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어느 시기에서 시작한다. (1부)
작가 소개
지은이 : 희음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하면서 르포와 시, 에세이를 쓴다. 기후-생태운동, 동물운동, 평화운동을 여러 해 이어왔다. 평등한 관계 맺기와 상호 돌봄이 어떻게 모두의 일상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모임과 세미나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그림책 《무르무르의 유령》이 있다. 르포 《김용균, 김용균들》, 에세이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 기후 시집 《여름, 연루》 등을 동료들과 함께 썼다.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며: ‘함께 잘 남는 일’을 따라간 기록
1부 | 투쟁과 연대와 돌봄의 역사
1장 노조가 생기기 전, 이미 시작되고 있던 싸움
2장 싸움의 형식을 갖추다
3장 약속을 문장으로 만들다
4장 청산 발표에 맞서, 서로를 붙들고 공장 밖으로
5장 저항하고, 지키고, 돌보는 몸
6장 공장을 덮친 700여 명의 경찰
7장 국경 너머의 연대
8장 이웃은 어떻게 싸움의 형식이 되었는가
9장 사회적 고용기금이라는 선택과 뚜벅이재단이라는 미래
#장면들
2부 | 목소리들
1장 끝까지 함께
2장 묵묵히 나아가기
3장 이웃, 동사가 되다
4장 법과 정치, 그리고 더 멀리
5장 서로를 세우며 나아가도록
나가며: 몸들이 남았다
한국와이퍼 투쟁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