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삼국유사』 번역·해설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인 『삼국유사 기이 2편』은 문무왕 시기부터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문 번역과 해설, 유적·유물 이미지를 함께 제시하여 통일 이후 신라의 역사와 전승을 따라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출판사 리뷰
출간 의의
통일 이후 신라의 역사와 전승을 따라가는 『삼국유사』 세 번째 이야기
도서출판 혜안에서 『삼국유사』〈기이 2〉의 원문과 번역, 해설을 함께 담은 『삼국유사 기이 2편』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앞서 펴낸 『삼국유사 흥법·탑상편』, 『삼국유사 기이 1편』에 이은 『삼국유사』 번역·해설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이다.
『삼국유사』는 모두 아홉 가지 편목 아래 144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고전이다. 그 가운데 〈왕력〉편이 삼국 왕들의 연표를 간략히 정리한 부분이라면, 본격적인 이야기는 〈기이〉편에서 시작된다. 일연은 이 〈기이〉편을 다시 둘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기이 1〉편이 고조선 단군왕검부터 신라 태종무열왕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기이 2〉편은 문무왕 시기부터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따라간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맞이한 새로운 위기, 왕권의 변화, 불교 신앙과 민간 전승, 신라 말기의 혼란과 고려로의 이행이 차례로 펼쳐진다.
첫머리에는 〈문무왕 법민〉이 놓인다. 이 항목에는 의상이 당에서 돌아와 신라 침공 소식을 알린 일, 명랑 법사가 문두루비법을 행하여 위기를 넘겼다는 전승, 문무왕이 죽은 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이어 신문왕이 문무왕과 김유신이 내려준 신령한 피리 만파식적을 얻는 이야기가 뒤따른다.
그 뒤로 효소왕대 죽지랑과 득오의 일화, 성덕왕대 수로부인 설화, 경덕왕과 충담 스님, 표훈 대덕의 이야기, 혜공왕대의 불길한 징조와 정치적 혼란, 원성왕의 즉위와 꿈의 해석, 흥덕왕과 앵무새, 경문왕의 비밀, 처용랑과 망해사, 진성여대왕과 거타지, 경명왕과 경애왕, 김부대왕 곧 경순왕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말미에는 남부여·전 백제·북부여, 무왕, 후백제와 견훤, 가락국기 등 백제·후백제·가야 관련 항목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기이 2〉편은 신라 중대와 하대의 왕대별 이야기만이 아니라, 백제와 가야, 후백제까지 아우르는 『삼국유사』 특유의 넓은 역사 기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원문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옮기고, 독자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해설을 덧붙였다. 해설은 인명·지명·사찰·불교 용어와 역사적 배경을 필요한 범위에서 풀어 설명하며, 문무왕릉비, 감은사지, 사천왕사지, 망덕사지, 성덕대왕신종, 수로부인 관련 유적 등 다양한 유적과 유물 이미지를 함께 제시한다.
따라서 『삼국유사 기이 2편』은 『삼국유사』를 처음 읽는 일반 독자에게는 고전 읽기의 길잡이가 되고, 한국 고대사와 불교문화, 고전문학, 불교미술을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자에게는 항목별 내용을 검토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된다. 문헌 속 이야기와 실제 역사 공간을 함께 읽도록 이끄는 점도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본문의 흐름
문무왕, 만파식적, 수로부인, 처용랑, 경순왕까지
이 책의 앞부분은 문무왕에서 신문왕에 이르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구간에서는 나당전쟁, 사천왕사와 문두루비법, 문무왕의 동해 용 전승, 감은사와 이견대, 만파식적 설화가 서로 이어지며 통일 이후 신라가 맞이한 국가적 위기와 그 위기를 기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중간부에는 성덕왕에서 경덕왕에 이르는 시기의 이야기들이 놓인다. 성덕왕 대의 구휼과 봉덕사, 수로부인 설화, 효성왕대의 관문 축조와 대외 관계, 경덕왕과 충담 스님·표훈 대덕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는 정치와 불교, 향가와 차 문화, 산신신앙과 왕실 의례가 함께 어우러진 신라 문화의 여러 결을 살필 수 있다.
후반부는 혜공왕에서 경순왕까지 이어지는 신라 하대의 흐름을 다룬다. 혜공왕대의 기이한 징조와 귀족 반란, 원성왕의 즉위와 꿈의 해석, 흥덕왕과 앵무새, 신무왕과 염장, 경문왕의 비밀, 처용랑과 망해사, 진성여대왕과 거타지, 경명왕과 경애왕, 김부대왕 곧 경순왕의 이야기를 통해 신라 말기의 정치적 동요와 왕조의 마지막 장면이 차례로 드러난다.
책의 말미에는 남부여·전 백제·북부여, 무왕, 후백제와 견훤, 가락국기 등 백제·후백제·가야 관련 항목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기이 2〉편이 통일 이후 신라의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삼국유사』가 품고 있는 고대 국가들의 다양한 전승과 기억을 함께 보여주는 편목임을 말해준다.
오늘의 독자를 위한 『삼국유사』 읽기
고전 원문과 역사 현장을 함께 읽는 번역·해설서
『삼국유사 기이 2편』은 『삼국유사』를 처음 읽는 일반 독자에게는 고전 읽기의 길잡이가 되고, 한국 고대사·불교문화·고전문학·불교미술을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자에게는 항목별 내용을 검토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된다. 대학 강의와 교양 수업에서 『삼국유사』를 다룰 때에도 번역과 해설, 도판 자료를 함께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삼국유사』를 원문에 가깝게 읽으면서도, 오늘의 독자가 그 맥락을 놓치지 않도록 돕는다. 신화와 역사, 불교와 정치, 왕실의 기억과 민간의 전승이 겹쳐 있는 〈기이 2〉편을 통해 독자는 통일 이후 신라의 깊고 복합적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특징
원문에 충실한 번역, 서사 흐름을 따라가는 해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원문과 번역, 해설을 한 자리에 놓았다는 데 있다. 원문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옮겼고, 번역문은 현대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문맥과 흐름을 살려 정리하였다. 해설은 원문의 서사 순서를 따라가되, 독자가 이야기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명, 지명, 사찰, 불교 용어, 역사적 배경을 함께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유적과 유물 이미지를 풍부하게 배치하였다. 문무왕릉비 비편, 감은사지, 사천왕사지, 망덕사지, 성덕대왕신종, 수로부인 관련 유적 등 본문과 관련된 자료를 함께 실어, 독자가 문헌 속 이야기를 실제 역사 공간과 문화유산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삼국유사』의 전승이 종이 위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지 않고 오늘의 유적과 유물 속에서도 계속 읽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해설에서는 판본상의 문제와 기존 해석의 쟁점도 필요한 범위에서 다룬다. 예컨대 〈문호[무]왕 법민〉에서는 본문과 주석의 경계, 나당전쟁과 사천왕사 창건, 문무대왕릉과 동해구의 의미 등을 살피며, 문헌 비평과 역사문화 해설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런 방식은 『삼국유사』를 단순한 설화집이 아니라 역사와 전승, 불교 신앙과 지역 기억, 문헌과 현장이 함께 얽힌 고전으로 읽도록 이끈다.
문무왕과 동해구
고유섭과 황수영의 학문적 자취
이번 책의 첫머리인 〈문무왕 법민〉 해설에서는 문무왕의 동해 용 전승, 감은사, 이견대, 문무대왕릉을 둘러싼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살핀다. 이 과정에서 20세기 한국 불교미술 연구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고유섭과 황수영 두 사제의 연구 성과도 함께 소개하였다. 문무왕릉과 동해구, 감은사와 이견대는 『삼국유사』의 전승이 단지 문헌 속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근현대 한국 미술사 연구와도 깊이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장소들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일연
고려의 승려이다. 속성은 전씨, 이름은 견명, 자는 회연, 호는 무극·목암이다. 경주 장산군(지금의 경산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 향리 출신인 언필이다. 1206년(희종 2년)에 태어나 1289년(충렬왕 15년) 입적하였다충렬왕 3년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 집필에 착수하였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하였다.9세 때 해양(지금의 光州) 무량사에서 취학했으며,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대웅장로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227년(고려 고종 14년) 선불장에 나아가 상상과에 급제한 이후 포산(현풍현 비슬산)의 보당암·무주암·묘문암 등지에서 머물렀으며, 1237년 삼중대사가 되고 1246년 선사가 되었다.대몽항쟁기 일연은 포산에서 22년을 보내면서 뚜렷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1249년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머물게 되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최이에게 반발한 정안이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기피하여 가지산문의 일연을 초청한 것인데, 이로 인하여 가지산문의 승려들이 최씨 정권과 연결되어 1251년에 완성된 대장경 조판 중 남해분사에서의 작업에 참가하게 되었다.1259년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원종 2년) 원종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의 법맥을 계승했다. 이는 그가 가지산문(헌덕왕 때 보조선사 체징이 도의道義를 종조宗祖로 삼고 가지산 보림사에서 일으킨 선풍)에서 사굴산문(범일이 강릉의 굴산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으로써 사굴산파 또는 굴산선파라고 함)으로 법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원종을 옹위한 정치세력이 불교계를 통솔하기 위해 일연을 이전의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대신한 계승자로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1268년 왕명에 의해 운해사에서 대장낙성회를 주관하고, 1274년 비슬산 인홍사를 중수한 후 왕의 사액에 따라 인흥사로 개명했으며, 같은 해 비슬산 용천사를 불일사로 개명했다.1281년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에게로 가서,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골의 병화로 불타 버린 황룡사의 모습을 목격하였다.1282년 충렬왕에게 선禪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1283년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冲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 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그 뒤,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1284년에 타계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경상북도 군위 인각사에서는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 개최하였다.1289년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와 죽허가 있다. 저서에는 『삼국유사』 5권, 『선문염송사원』 30권, 『화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등을 저술하였다.
목차
차례는 「책머리에」로 시작하여 〈문호[무]왕 법민〉, 〈만파식적〉, 〈효소왕대 죽지랑〉, 〈성덕왕〉, 〈수로부인〉, 〈효성왕〉, 〈경덕왕, 충담 스님, 표훈 대덕〉, 〈혜공왕〉, 〈원성대왕〉, 〈제철보다 일찍 내린 눈〉, 〈흥덕왕과 앵무새〉, 〈신무대왕, 염장, 궁파〉, 〈48대 경문대왕〉, 〈처용랑과 망해사〉, 〈진성여대왕과 거타지〉, 〈효공왕〉, 〈경명왕〉, 〈경애왕〉, 〈김부대왕〉, 〈남부여, 전 백제, 북부여〉, 〈무왕〉, 〈후백제와 견훤〉, 〈가락국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