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2주 휴가를 내고 공부를 하러 오다니, 미쳤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응급의학과 의사,
이번엔 히라가나 가타카나 사이에서 분투하다
1년에 딱 두 번뿐인 휴가를 도쿄 어학원에 바친
에세이스트 남궁인의 엉뚱하고도 솔직한 여행기여기 1년에 두 번뿐인 휴가로 단기 어학연수를 택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에세이스트인 남궁인. 대학 시절 배낭여행에 빠져 여행자가 되기를 꿈꿨으나 여행을 직업으로 삼지는 못했고 그저 휴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직장인이 되었을 뿐인 그. 고로 여행은 남궁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외국어 공부 또한 일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2주간의 휴가를 도쿄 어학원에서 보내기로 한 것은 저자에게도 이례적인 일! 전날 야간 당직을 마치고 당일 강의 일정 두 개를 소화한 뒤, 탑승한 밤 비행기는 그를 도쿄에 데려다주었고, 아침이 오자 그는 캐리어를 끌고 시부야 어학원으로 레벨테스트를 보러 간다. 가깝지만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나라의 언어라서, 무엇보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어서, 단기 연수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그에게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낮에는 유학생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오후엔 ‘고독한 미식가’ 모드로 음식을 탐하며, 깊은 밤엔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홀로 맥주를 홀짝이며 고독에 빠지는 그… 짧고도 밀도 높은 2주간의 어학원 생활을 담은 『시부야의 초급반』―이 책은 남궁인의 첫 여행기다―에는 새로운 언어, 사람, 문화와의 만남이 생생하고도 유쾌하게 펼쳐진다.
챗GPT를 통해서 일본에 있는 어학원 한 곳을 소개받았다. 공식 언어는 일본어, 보조 언어는 영어인 학원이었다. (…) 나는 문의 이메일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레벨테스트를 신청 해두었다. 테스트가 끝난 후 바로 반을 배정받아 정확히 2주만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였다.
위치는 시부야를 생각했다. <주술회전>에서는 빌런이 시부야를 몽땅 부숴버리면서 ‘시부야 사변’을 벌인다. 그래서 그냥 그곳에 가고 싶었다. 번화해서 외롭지 않은 곳, 추억을 만들어두면 좋을 곳, 우연처럼 왜 여기 왔는지 설명할 수 있는 곳. 지금까지 추억이 묻어 있는 수많은 장소처럼 시부야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_「프롤로그」, 16쪽
집에 있긴 끔찍하고, 혼자 하는 여행은 지겹다면?
당신도 ‘초급반 학생’이 되어라!
인생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시작된 특별한 도쿄행호텔에서 눈을 뜨면 시부야 스크램블을 지나 어학원으로 등교하는 남궁인. 여행지에서 그의 루틴은 등교와 수강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일본에 체류중인, 국적도 인종도 다양한 외국인들이 현지어를 배우겠다고 모인 어학원 초급반에서 그는 매일같이 새 구문을 접하고 이를 반복하고, 테스트를 거치며 일본어를 습득해간다. 처음에는 식당의 메뉴판을 읽게 되고, 차차 말하기가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 2주간의 시간이 지나자 일본어로 10분 정도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반복을 통해 ‘예민하게 나아지는 세계’로 가는 그의 성장도 흥미롭지만, 한자가 낯선 서양인 친구들이 수업 과정에서 겪는 좌충우돌이나,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간 편의점에서 펼쳐지는 대화, 갑자기 저자가 중국어를 구사하게 되는 상황 등은 시트콤 한 편 한 편을 보듯이 생생하다. 나아가 외국어 공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이해와 소통’이라는 언어의 본질에 공감하게 한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안부를 묻고, 어제 뭐 했느냐고 묻고,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고, 어디에 갔느냐고 묻고, 건강하고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방식의 문답을 통해 낯선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여기서 열하루 동안 일본어를 사용해서 타인에게 묻는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과 심정적으로 아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_「#열한번째 날―도쿄의 마지막 밤」, 242~243쪽
앞서 썼듯, 충동적이나마 저자가 일본을 선택한 배경에는 <진격의 거인> <장송의 프리렌>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덕질이 자리한다. 즉 이 텍스트를 “원어로 직접 이해하고 뉘앙스를 파악해서 그들의 세계로 진입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루를 일본 애니메이션 보기로 마감하는 일과 속에서 그의 애니메이션 읽기는 덕후들에게는 텍스트 해석의 즐거움을, 일반 독자들에게는 OTT 목록을 추가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장송의 프리렌>의 주인공은 영원할 정도로 오래 살아가는 엘프 ‘프리렌’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이기도 하다. 그는 용사 ‘힘멜’과 힘을 합쳐 마왕을 토벌했지만 힘멜은 인간으로서 수명이 다해 죽고 만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유한하고 덧없으며 모든 생명체는 지나치게 삶이 짧다. 하지만 인간들은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프리렌은 세상을 떠난 자들이 남긴 것이 덧없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낸다. (…) 그러니까 이 작품은 유한하고 무의미한 세계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인간에 대한 헌사였다. 궁극적으로 덧없을지라도 끝없이 무엇인가를 이룩해야 하는 인간들, 그래서 결국 의미를 발견해내고 야마는 인간들.
_「#열째 날―가끔은 친구라고 부를 사람」, 212~213쪽
“적당한 행복을 느끼려면 낯선 곳에 가야 한다”
열두 번의 낮과 밤, 시부야에서 도착한 남궁인의 문장들
혼자의 풍경 속에 당신도 끼어들고 싶은 이야기 초급반 등교가 일상이지만 『시부야의 초급반』에는 맛집 순례나 후지산 관광 같은 여느 여행기에서 볼 법한 이야기 또한 풍성하다. 가령 도쿄 거리를 배회하다 문득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고, 시부야 타워레코드나 진보초 거리 등 문화적 공간들을 둘러보며, 행인들의 관찰 속에 문화적 차이를 헤아려보는 일은 여행자에게 특별히 허락된 시간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특권 중에서도 가장 큰 특권은 고독할 권리이고, 그 속에서 새삼스레 나를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어차피 혼자만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면, 다른 나라의 다른 공간에서 이런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여행을 떠난 그였기에 고독은 밤이면 여지없이 찾아온다. 저자가 탐독하는 책들 또한 미야모토 테루, 시바타 쇼 같은 전후 작가들의 실존과 삶의 의미를 묻는 작품인 만큼, 그는 삶의 무의미를 말하는 글줄에 자주 머문다. 그나마 “번화해서 외롭지 않은 곳” 도쿄이기에, “무엇인가에 집중”하며 “효용감”을 얻는 매일의 반복을 이어가기에 죽음과 삶이 오가는 일터 한복판에서의 치열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흘째 여기 있으니까, 나는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많은 기억들을 모두 잊어버렸다. 아니, 아예 내가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어버렸다. 그것은 자아의 저편으로 멀리 넘어가버렸다. 나는 이 친구들과 이 클래스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일 뿐이다. 정말 이곳에서의 하루 목표와 공부, 해야 할 일 외에는 다른 것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문득 나를 소개해야 할 때만 잠깐씩 한국의 나를 떠올렸을 뿐이다. 언어적 고립에 이어서 자아의 고립까지도 달성한 것이다.
_「#열째 날―가끔은 친구라고 부를 사람」, 199쪽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질문하다가도 어느새 초급반과 도쿄 거리의 풍경을 오가며 예기치 못한 경험을 선보이는 『시부야의 초급반』은 한 갓생러의 여행기이자, 언어의 배움을 통해 나를 확장해가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짧은 여행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찾고자 하는 사람, 언어 공부에 살짝이나마 발 담그고 싶은 이들, 진지함과 웃음이 나란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 일본 여행과 일본 문화를 사랑하는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위치는 시부야를 생각했다. <주술회전>에서는 빌런이 시부야를 몽땅 부숴버리면서 ‘시부야 사변’을 벌인다. 그래서 그냥 그곳에 가고 싶었다. 번화해서 외롭지 않은 곳, 추억을 만들어두면 좋을 곳, 우연처럼 왜 여기 왔는지 설명할 수 있는 곳. 지금까지 추억이 묻어 있는 수많은 장소처럼 시부야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_「프롤로그」
월요일 아침의 거리는 한산했다. 캐리어를 끌고 예약해둔 호텔로 왔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호텔 로비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조금 피로가 풀리자 공부도 하고 책도 읽을 겸 시부야 거리로 나섰다. 엑셀시오르카페에서 주문을 하고 보니 주문받는 사람이 한국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임을 눈치채고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나는 왜인지 기묘한 일본어로 답을 했다. 잘되지 않는 외국어를 굳이 써보려고 노력하는 이상한(혹은 가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본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잘했다. 아마 일본에서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저런 경험을 동경했다. 외국에서 낯선 언어를 쓰며 살아가는 이방인 이 되는 것.
_「#첫째 날―사실, 이건 내 휴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