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디 벨트Die Welt가 선정한 「2017년 가장 아름다운 그림책」
언어를 통해 이어지는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할머니가 선물한 마지막 단어』는 단어(말)를 소재로 한 독특한 그림책으로 할머니와 손자의 세대를 이어가는 사랑을 담은 책이다. ‘언어와 사랑’이라는 얼핏 이질적인 소재를 열정적이고 상상 가득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아름답게 구현해 따스한 감동을 선사한다. 세계적인 신문, 디 벨트Die Welt가 ‘2017년 가장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선정했다.
미오는 할머니에게서 말을 배웠다. 그래서 미오의 첫 단어도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방은 아주 작았지만, 단어들이 가득 차 있어서 마치 으리으리한 궁궐 같았다. ‘스프링 도깨비’나 ‘타자기’ 같이 시끄럽고 거친 단어도 있었고, ‘도망’이나 ‘눈동자’처럼 조용하고 수줍은 단어도 있었다. ‘레몬사탕’,‘탭댄스’처럼 기분 좋은 단어도 있었지만 ‘해파리’,‘고름’처럼 소름 끼치는 단어도 있었다.
미오는 할머니에게 단어를 배우면서 분노와 배려, 슬픔과 두려움, 기쁨과 희망까지 배우게 된다. 단어는 감정을 실어 나르는 그릇이므로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할머니는 미오의 뿌리이자 스승이었다.
그런데 미오의 단어가 늘면 늘수록 할머니의 방은 점차 조용해졌다. 미오는 다른 곳에서 배운 단어들을 모아 할머니 방으로 가져갔다. ‘까치발 게임’,‘메모리 카드’,‘치킨 너깃’ 같은 새롭고 멋진 단어들로 할머니의 방을 가득 채워주고 싶어서.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그들이 낯설기만 하다. 할머니는 영영 그들과 친구가 되지 못했다.
할머니의 방은 다시 작게 변해버렸다. 침대 하나, 의자 하나, 옷장 하나와 잡동사니가 든 상자 몇 개만 있는……. 병석에 누운 할머니는 가느다랗게 숨을 쉬었다. 이제 할머니는 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갖고 있던 단어들을 모두 미오에게 선물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꽁꽁 숨어 있던 단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할머니의 베개 밑에서 참고 기다린 것이다. 할머니는 앙상한 손가락으로 그 마지막 단어를 힘겹게 끄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미오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 단어는 할머니가 미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과연 그 마지막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이야기의 끝은 먹먹하지만 따스하다.
할머니는 자신의 단어들을 모두 미오에게 물려주고 돌아가셨다. 앞으로 미오는 그 단어들을 잘 간직하고 지켜, 미래에 나타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할 것이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니콜라 후페르츠의 글은 아이가 자랄수록 할머니는 점차 늙어 결국 죽음에 이르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언어’를 소재로 은유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는 단어들을 마치 물건처럼 나눠줄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해,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자에게 자신의 단어들을 모두 물려주자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할머니의 사랑과 세대교체를 담은 그림책 중에 이토록 유머러스하면서 인상적인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텍스트 그 이상을 보여 주는 빛나는 일러스트레이션 엘자 클레버는 현재 독일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할머니가 선물한 마지막 단어』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파란색과 흰색, 붉은 색을 주조로 자신만의 우주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그의 놀라운 상상력은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은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층 더 빛난다.
『할머니가 선물한 마지막 단어』는 책을 펼치자마자 뜬금없이 우주가 나타난다. 수많은 단어들의 세계를 별이 가득한 우주로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단어들이 만들어 내는 상상의 시공간을 너른 우주로 표현한 것일까? 단어들이 몽땅 다 사라진 할머니의 방을 텅 빈 우주로 보여주는 것일까? 엘자 클레버가 아닌 이상 누구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책장을 넘기기 전에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이 있다. 언어라는 렌즈를 통해,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그림책의 시작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또 도망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어요. 늘 창턱 밑에 쪼그리고 있었으니까요.
방으로 들어오라고 불러도 그냥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지요.
도망이 거기 숨어 있다는 것도 할머니가 알려 줘서 알게 된 거예요.
사실 잘 믿기지 않았지만요.
눈동자는 침대 밑에 숨어서 깜박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찾아낸 단어 중에서 가장 예뻤어요.
엘자 클레버가 그린 ‘도망’과 ‘눈동자’는 미오가 그 단어에서 느끼는 감정까지 담아낸다. 일러스트레이션이 텍스트를 넘어 그 이상을 보여주는 장면들 중 하나이다.
열정적인 빨간 머리카락을 공유하는 미오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수많은 물건들이 공중에서 맴돌거나, 날아다니거나, 둥둥 떠다닌다. 그것들이 바로 미오가 할머니에게 배우는 단어들인데 동물, 기계, 과일, 야채, 옷, 학용품, 장난감과 악기 등등 텍스트에 나오지 않는 물건들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것들은 모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혹은 바닥으로 내리 꽂히며 넘실거린다. 새로운 단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의 호기심과 즐거움이 화면 밖으로 흘러넘치는 듯하다. 이런 미오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도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